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치버 Dec 21. 2022

변절자 02

#성당을 나오다

어느 날 주일학교의 순교자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뒷산 중턱에서 나의 온몸을 묶고, 20대 남자 2명이 주리를 틀었다. 그들은 나에게 아프냐고 물어보면서 조금씩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처음엔 별로 안 아파서 괜찮다고 답했다. 아파야만 하는 체험인지, 괜찮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힘을 주어 주리를 또다시 틀었다. 이번엔 좀 전과 달리 사타구니에 벼락같은 통증이 피어나 소리를 쳤고, 눈물이 났다. 한꺼번에 이목이 쏠리자 정말 내가 순교자가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수십 명의 아이들 앞에 보인 눈물은 초등학생인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성당을 더 이상 다니지 않아야 할 명분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초등학생에게 주리 틀기 체험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견진성사를 받았다. 당연히 나의 의지는 아니었다. 견진성사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는 힘을 갖게 된다. 한마디로 이제 전도의 시작이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믿는 사람들의 역할과 책임은 비종교인 또는 다른 종교인을 섭외하는 일이다. 수수료 0%의 기부형 헤드헌터다. 이 세상에 종교 장사만 한 게 없다. 나는 조카를 헤드 헌팅했다. 당연히 나의 의지가 아닌 엄마와 이모의 합작이다. 나는 조카의 대부가 되었다. 이제 조카도 가톨릭 무기징역형이다. 나는 그 뒤로 조카에게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또 다른 죄인을 탄생시킨 죄책감에 괴로웠다.

만 12세 초등학교 6학년부터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고, 누군가의 대부 또는 대모가 된다 

나의 사춘기는 잿빛이었다. 그때의 나를 떠올리는 일이 여전히 편치 않다. 지금은 누구의 탓도 하고 싶지 않지만, 사춘기의 나는 누군가를 탓해야만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했다. 벽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그 대상이었다. 나에게 신이라는 존재는 무용지물이었다. 오히려 나를 괴롭혔다. 신이라는 존재를 부정해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금의 죄책감이라도 내려놓아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성당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성당에 가지 않은 이후로 나의 주말에 자유가 찾아왔다. 14년간 뺏긴 나의 토요일이 억울했지만, 앞으로 평생 동안 주말 시간의 1분 1초도 신에게 뺏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내 방구석에 걸린 지긋지긋한 십자가를 드디어 퇴출시켰다. 


#무신론자

굳은 의지로 종교와 작별한 스스로에게 경외심을 느끼며, 비종교인으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나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안티 크리스트가 될 것인가, 무신론자가 될 것인가. 안티 그리스도는 신의 존재는 인정하면서 그의 존재를 비난하는데 반해, 무신론자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안티 크리스트에서 점차 무신론자로 변해갔다. 처음엔 신에 대한 증오가 커지면서 종교를 버렸기에 신이 밉다는 정도였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더 큰 복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뿐만 아니라 있지도 않은 것을 믿는 사람들까지 한 방에 바보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신론의 대표주자, 리처드 도킨스

아이러니하게도 신을 부정하면서 오히려 신에 대한 생각은 늘어갔다. 신을 부정하는 나의 근거가 필요했고, 이 근거에 동의할 사람이 필요했다. 사람들에게 나를 무신론자라고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유신론자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천지창조와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심취한 자들의 아둔함과 십자가 나무 쪼가리 앞에서 무릎 꿇는 인간들의 나약함이 우스웠다. 신이 존재한다는 근거는 누구도 입증할 수 없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다’는 나의 논리는 어디에서나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하다고 믿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벌어져왔던 끔찍한 일들을 가만 둘 리 없지 않은가. 전쟁, 질병, 차별로 고통받는 인간들을 관망하는 신이라면, 있으나 마나 한 것 아닌가. 그런 신 따위를 믿는 것이 과연 자랑할 일 인가. 기독교인들의 행태는 어떠한가. 이건 종교가 아니라 비즈니스 아닌가. 세계 최대 교회라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창시한 조용기 목사가 한 말을 잊었는가. "헌금 많이 하면 복을 많이 받고, 헌금 적게 하면 복을 적게 받습니다. 그건 뭐 어쩔 수 없으니까." 이따위 말을 지껄이는 목사에게 돈을 갖다 바치면서 구원을 바라는가. 신과 신을 이용한 장사꾼들은 귀싸대기를 맞아야 할 것들이지 숭배할 대상이 아니다. 

대표적인 종교 전쟁인 십자군 전쟁에서 그리스 교도들은 ‘성스러운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살육을 행했다. 기독교 기사 단체인 ‘템플 기사단’은 하층 기사들의 탐욕을 이용해 그들의 재산과 가족을 담보 삼아 이자 장사, 즉 고리대금업을 시작했다. 1095년에 기획된 종교전쟁이 천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예루살렘을 두고 끊임없이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죄 없는 사람들은 전쟁의 희생자가 된다. 감히 신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히려 신의 존재 때문에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건 신인가 악마인가?

템플기사단의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이러한 논리를 무장하고, 유신론자들에게 항상 질문해 왔다. ‘왜 신을 믿는가?’, ‘정말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신이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는가?’. 당연히 유신론자들에겐 불편한 질문이었고,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신뿐만 아니라 그런 헛것을 믿는 자들 또한 똑같은 부류로 생각했다.

문제는 멍청한 인간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가족, 친인척, 친구, 대학 동기, 선후배 할 것 없이 신을 믿는 자들이 넘쳐 났다. 인간관계를 맺다가도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진화가 덜 된 원숭이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천국만 보내준다고 하면 간이라도 팔아먹을 인간들. 나는 그들을 의식 수준 미달로 평가했고, 그들 역시 나의 보이지 않는 조롱을 느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엔 무신론자가 많았다. 중학교 때부터 록 음악에 심취했던 나에게 딱 맞는 취향의 사람들로 필터링되어 모이기 시작했다. 무신론자로서 종교를 믿는 이들이 우습게 보였던 것처럼, 록 음악을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대중가요를 무시했다. 나의 취향은 더욱더 확고해졌다.

비틀스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도 신을 믿지 않았다

교회 근처에도 갈 일 없던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교회에 갈 일이 많아졌다. 잡지사에서 취재기자로 일하면서 교회 공간을 소개하는 코너를 맡게 되었다. 교회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목사를 인터뷰하고, 어떨 때는 기도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까지 각종 교회를 다니며, 교회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그들의 생각을 글로 담았다. 물론 내가 무신론자인 것은 말하지 않았다. 교회 건축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를 인터뷰하며, 신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신을 믿음에도 교회의 잘못된 역할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지고 깊이 있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종교인에 대한 나의 필터를 조금씩 갈아 끼웠다. 신을 믿는 모든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신에 대해 무비판적인 태도로 맹목적인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래도 여전히 신을 믿는 건 멍청한 짓이지만.

작가의 이전글 변절자 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