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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Sep 03. 2020

코로나19로 전시가 중단된 후에...

어느 시골 큐레이터가 팬데믹 시대에 대처하는 방법

전시가 문을 닫게 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휴가 중이었다. 


각자 5일씩 의무적으로 연차를 소모하라는 지침에 나는 새로운 전시가 오픈하고 제대로 굴러가게 되자 이틀간 휴가를 냈고, 바로 그 휴가 둘째 날이었다.


8월 중하순의 어느 금요일, 나는 코로나 지역감염 확산으로 인한 회사 전체 휴관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고 1초 동안 머리가 멍했다. 전시 시작한 지 겨우 8일째 되던 날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홍보 초기 단계였는데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 이번 주 주말에는 입소문이 나서 두 배는 오겠군'하고  김칫국도 마셨다. 아이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을 주 타깃으로 한 전시라 엄청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 사달이 난 것이다.



0. 전시 담당자, 멘붕 오다


공연이나 행사도 그렇겠지만, 전시를 중간에 닫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복잡한 문제이다.


전시가 시작하기 전에 취소하는 것도 그렇지만 진행 중에 휴관하기 위해서는, 작가와의 계약이나 전시 단체와의 계약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특히 국비 지원사업을 받아 진행하는 전시라면 지원금을 주는 기관 담당자와도 충분히 이야기가 선행되어야 하고 최소 충족해야 하는 전시일자와 관람객 수도 생각해야 한다.


그것뿐인가. 그동안 홍보가 나갔던 홈페이지와 각종 SNS 홍보글을 수정해야 하고, 보도자료도 다시 보내야 하며, 전시가 문을 닫는 동안 어떤 형식으로 서비스를 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공연처럼 예매된 티켓을 환불해줘야 하는 경우는 없지만(무료 관람이므로) 관람객을 대상으로 쌓아놓은 체험용품 재고도 생각해야 하고, 전시를 위해 일시적으로 고용된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비용을 지불할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1. 전화기에 불이 난다


전시 중단 소식을 듣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화를 돌리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지원금 담당자
이 전시는 국비지원사업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원금을 주는 기관 담당자와도 통화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 나에게 담당자는 곤혹스러운 목소리로 "안 그래도, 지금 다른 기관에서도 전시 중단한다고 연락 오고 있어요."라고 힘없이 말한다. 수도권발 집단감염 확산 여파가 전국으로 퍼져 다들 비상인 모양이었다.

그다음은 전시 단체
이번에는 전시 단체가 따로 있는 전시여서 내가 작가 한 분, 한 분 전화를 돌릴 필요까진 없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마치 부고를 알리 듯, 초조하게 전화기 신호가 가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통화가 된 단체 대표님께, 전시 중단과 함께 온라인 전시 제공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외 전시와 관련된 사람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전시가 중단된 것을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시 관람 예약을 해놓은 곳부터 전시 도슨트까지.

각종 교육 프로그램 관계자들
사실 나는 전시뿐만이 아니라 각종 교육 프로그램(자체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국비 지원사업까지)도 담당하고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 강사들과 국비 지원 기관 담당자, 수강생들과 통화를 마치고, 상사께 전화를 걸어 보고를 하고 났더니 혼이 다 빠졌다.

 


2. 온라인 전시를 위한 맨땅헤딩


회사에 출근한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시 영상 촬영이었다. 


엄청 큰 기관도 아니니 자체 영상팀이라는 있을 리도 없고, 이제 와서 급조해서 예산을 써서 영상 업체를 섭외해서 전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갖고 있는 장비(스마트폰)를 활용해서 찍는 것뿐이었다. 서둘러 회사 유튜브 브랜드 계정을 하나 파서 로고만 걸어놓았다.


기관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전시 영상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영상 촬영의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사실 더 고민되는 것은 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내가 쓰고 있는 해설 하나하나가 어떤 논란을 일으킬 쟁점을 제공하지는 않는지 고민해야 했고, 작가가 의도하는 것을 영상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했고, 시청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최대한 상영 시간을 줄여야 했다. 게다가 내가 자주 쓰는 유행 지난 개드립 같은 것도 이런 공식 전시 영상에는 절대 쓸 수 없다.


그렇게...

->하루 종일 전시 영상을 편집하고

->그것을 다시 전시 단체의 대표에게 보내서 의논을 하고

->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 영상을 대체하고

->영상을 대체한 덕에 자막이 다 밀려서 다시 처음부터 편집하느라 하루를 보내고

->기타 등등 영상 전문가가 아니니 삽질한 내용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영상이 탄생했다.


규모가 큰 기관이 서비스하는 온라인 전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저퀄리티를 자랑(?)하는 영상이었지만, 눈을 딱 감고 영상을 업로드했다. 영상을 업로드하면서 새로 파서 구독자가 나 혼자 뿐인 따끈따끈한 우리 기관 유튜브에 말이다.

 


3. 온라인 전시 홍보를 해야...지?


영상을 올렸으면 이제는 홍보를 할 차례다.

그런데 도대체가 온라인 전시 홍보를 해 본 적이 있었어야지!


온라인 전시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다면 애초에 홍보를 잘 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아니다. 코로나 상황에 맞닥뜨린 전국의 수많은 큐레이터들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도 온라인 전시 홍보를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아는 것이 1도 없었다. 국비 지원사업이라 영상 조회수가 관람객 수에 추산되니까 죽어라고 홍보를 해야 하지만, 대체 온라인 전시 홍보는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오프라인 전시를 위해 전시 동영상을 찍은 적은 있었지만, 전시 동영상 자체를 홍보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홍보물 제작비도 다 써버린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스팸에 가까운 홍보글로 인터넷에 도배를 하는 방법뿐이었다. 지역 커뮤니티 사이트와 페이스북 그룹, 단톡방을 비롯해서 수 십 군데에 수 십 개의 글을 내용만 조금씩 다르게 올렸다. 하다 보니 갈수록 뻔뻔스러워진다. '매진 임박' 낚시글도 올린다. "체험 재료 신청하시면, 배달해드립니다. 이제 00개 밖에 안 남았네요."라고.



4. 재료 남기면, 지구한테 벌 받는다


그렇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쓸 체험 재료가 잔뜩 쌓여있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의 재료이기 때문에 이 전시가 끝나면 쓰레기통으로 향할 물건들이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아예 할 수 없다. 모여서 하는 전시 연계 교육은 못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나마 사람들이 상시적으로 모여있는 유치원이나 센터 등에 배달할 수는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사람들이 온라인 전시를 관람하게끔 하면 조회수도 올라간다.


그렇게 지역 내에서 체험 물품들을 주문받아 무료로 배달하기 시작했다. 물론 배달원은 나다 요즘 유행한다는 비대면 배달이다.


방법은 이렇다:

 ->주문하신 고객님과 통화를 하고는

->체험 재료와 설명서, 유튜브 관람 방법 설명문까지 세트로 들어있는 쇼핑백을 문 앞에 놓고

->그 위에 가니쉬로 소독약을 살짝 뿌린다. 마스크 너머로 차아염소산나트륨의 쨍한 냄새가 난다.

->그리고는 숨도 꾹 참은 채 얼른 도망치듯 돌아서 나와서는 고객님에게 전화를 한다. "문 앞에 갖다 놨습니다. 살짝 젖어 있는 것은 소독약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배달기사님들의 수고가 몸소 느껴진다.



5. 그렇게 끝난 줄 알았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오프라인 전시 기간이 끝이나고, 전시 철수까지 모두 끝이 났다.....


그럴 리가. 정산이 남았다.


전시가 중단되었다고 정산까지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시를 열었으면 암만 일찍 닫더라도 이제 남은 예산을 집행하고, 그것을 집행할 서류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비지원사업이라면, 'e-나라도움'이라는 악명 높은(이라고 다들 버릇처럼 말하지만 사실 종이서류로 처리하는 것보단 엄청 편리하다) 시스템을 통해서 정산 집행을 하고 마감을 해야 하며, 각종 영수증과 부가 자료들을 모아야 하며, 성과보고서를 쓰기 위해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탈탈 털어서 홍보 성과를 입증해내야 한다.






진행하던 전시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들은 내 생에 올해가 처음이었다.


앞으로 팬데믹의 시대가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또 이 같은 일을 얼마나 더 겪게 될는지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랬듯, 우리의 삶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서서히 변화해 온 장소에 중점을 둔 전시는 좋든 싫든 간에 빠르게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나갈 것이고,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불확실성도 이것을 더 속화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팬데믹의 시대에도 전시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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