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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Jul 01. 2022

김밥이 더 맛있는 국수집

재미없어서 책에는 담지 않았습니다만

내가 자주 가는 동네 김밥집이 있다.


사실은 국수 전문점인데, 김밥이 맛있어서 나는 김밥집이라고 부르곤 한다. 사장님이 김밥을 종류별로 어찌나 맛깔나게 잘 만드시는지 평일 오후 5시가 되면 문을 닫는 그 가게의 김밥을 먹기 위해서 가끔씩 반차를 쓴 적도 있다. 동네 가게지만 내가 주문을 하러 갈 때마다 거의 1분에 한 명씩 김밥을 사러 올 정도로 동네에서도 인기가 많다. 물론 그 가게는 명목상은 국수가게인지라 국수와 김밥을 함께 주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국수집이면서 이상하게도 종류도 딱 하나인 그 국수가 맛있어서 먹는 것이라기보다는 김밥에 곁들이기 위해 주문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가게의 사장님은 그 맛있는 김밥보다 국수에 어찌나 자부심을 갖고 계신다는 점이다. 가게 벽면에는 국수 재료 생산지에 대한 설명과 왜 이 가게의 국수가 건강에 좋고 맛이 좋은지에 대한 문구가 벽면에 도배되어있다. 가끔씩 가게에서 김밥을 주문하거나 국수를 시키면, 사장님의 자부심, 아니 국수-부심에 찬 일장 연설도 들을 수 있다.


예전에 나는 김밥을 주문하면서 카드 계산 되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사장님은 내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으시고


우리 국수가 육수를 00를 쓰구요, 국수 면은 00에서 생산한 걸 바로 가져다가 쓰거든요. 먹어보면 확실히 맛이 달라요.


라고 대답해서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쓰기도 했다. 이 사장님은 국수 얘기만 하느라 정작 사람들이 김밥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국수집 사장님을 볼 때마다 가끔씩 나도 저렇게 보이지 않을까 고민한다.


내가 기획한 전시의 관람객들을 관찰하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사람들이 내가 나도 저 국수집 사장님처럼 전시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씩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괴상한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의도한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것을 경험하게 하겠다는 일념아래 내가 생각하는 주제에 따라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곤 했다. 전시의 의도에 대해서 리플렛에 해설을 하고, 사람들이 전시의 주제를 제대로 느끼지 못할까봐 온갖 설명문으로 도배를 한다. 심지어 나는 한때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오디오 해설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용자가 없었기 망정이지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전시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것을 보여준다는 것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전시실에서 관람객이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는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1년에 한 번씩은 전시 관람객 연구를 하곤 했다. 말이 연구지 전시 공간을 관람객인 척 하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어떤 작품 앞에서 자주 멈춰 서는지, 뭘 불편해하는지, 무엇을 더 궁금해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설문지 답변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사실 피상적인 설문지 질문으로는 관람객들이 가지고 있는 깊은 생각에 대해 듣기는 힘들다. 그래서 전시 공간이 조금 한가할 때면 관람객들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관람객들을 관찰하다보니 먼저 패턴이 조금씩 보였다.


아침 일찍 전시실에 문을 열자마자 유모차를 끌고 젊은 엄마 몇 몇이 혼자서 한적한 전시 공간을 방문한다. 어린이 단체 관람은 주로 10시에서 12시까지인데, 대체로 점심시간 전 오전 시간대가 견학 활동을 하기에 편한 것 같다. 오후에는 둘, 혹은 여럿이 드문드문 관람을 하러 오는 편인데 특히 오후 4시 이후에는 유치원이나 학교 수업을 마친 어린이들이 부모님의 손에 이끌러 오거나 인근의 중·고등학생들이 들러서 전시를 보고 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말에 전시 공간을 방문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관람객에 대해서 분석하는 데에도 처음에 헛다리를 짚었다.


나는 오전에 혼자 오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서, 이 분들이 사실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밖에 나오는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시골이면서도 대기업 공장이 있다보니 일 때문에 서울 등에서 온 가족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이 곳에 내려온 아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분들이 시골에서 얼마나 답답할지 생각하면서, 아침에 전시실을 찾는 젊은 엄마들을 위해 작가와 티타임 같은 행사도 열고 재미있는 교양 강좌도 만들어볼까 고민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몇몇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서 내가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서요.


유모자를 끌고 온 동네에 사는 어느 젊은 엄마는 나에게 소곤소곤 대답했다.


아침엔 전시실 아무도 없으니까 좋더라구요.


그녀는 ‘아무도 없으니까’라는 말을 하면서 다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내 친구는 아침에 유치원 통원 버스에 태워 보내면서 제일 괴로웠던 것이 다른 엄마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를 사귀고 잘 지내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아이의 엄마들과도 친해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는데, 그게 회사생활만큼이나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집에서는 집안일과 아이에게 시달려서 가끔씩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친구 얘기를 그렇게 많이 들었으면서도, 전시실을 찾는 젊은 엄마들이 혼자 있고 싶다는 것을 받아들이는데에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나는 몇몇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서 결국 아침에 젊은 엄마들을 위한 행사를 열려는 생각을 깨끗이 접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전시실을 찾는 이유는 내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달랐다.


많은 사람들은 조용히 공간을 만끽하기 위해서 방문했고, 작품에 대해서 알고 작가에 대해서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힐링하기 위해서 미술 전시를 찾는다. 그런 사람들은 전시 해설이나 낯선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행사를 부담스러워했다. 반면에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전시실을 찾는 이유는 뭔가 체험할 것을 찾아서였는데, 이런 경우에는 최소한 전시 해설이라도 있어야 했고 만들기 같은 체험이 없다면 전시 활동지라도 기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일하는 곳은 공공기관인지라, 전시 공간이 술집이 많은 인근 학교의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게 있을만한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 오후 늦게 근처 고등학생들이 친구들과 함께 놀러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나는 학생들이 예술에 대해서 배우기 위해서 온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들은 시험이 끝난 뒤 심심해서 혹은 저녁 식사 전에 그냥 산책삼아 보러온 것이었다. 전시가 진행되는 기간 내내 오후가 되면 전시실에서 뭔가 노트에 쓰다가 집에 가곤 하는 미스터리한 초등학생도 한 명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일을 마칠 때까지 전시실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숙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전시실을 찾았고, 전시에서 원하는 것도 내가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도 어쩌면 그 국수집 사장님 같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김밥이 더 맛있어서 김밥을 먹으러 찾아오지만 국수만 고집했던 사장님처럼, 나 역시도 사람들이 전시 공간을 찾는 이유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전시라는 것이 일종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전시물을 통해서 지식을 배우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 전시는 신기한 것을 보고 배운다는 의미보다는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나는 그런 변화를 지지하고 전시가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늘 생각했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전시를 통해서 뭔가를 전달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냥 산책하듯이, 고요함을 즐기기 위해,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전시 공간을 찾을 수도 있다. 내가 전시 기획을 할 때 해야 할 일은 뭔가 하나라도 더 내 의도에 대해 전달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사람들이 전시를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전에 전시 공간의 한적함을 즐기기 위해서 오는 관람객을 위해서 전시실 입구에서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혼자 또는 여럿이 오는 관람객들이 앉아서 명상에 잠기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전시실에 벤치를 들여놓았다. 어린이를 위해서는 쉬운 활동지를, 어른들을 위해서는 컬러링 페이퍼를 비치해놓았다. 전시 리플렛이나 전시실 입구 벽면에다가 전시 의도를 주절주절 쓰는 것도 줄이고, 전시실 곳곳에 여백을 두고 사람들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짧은 문장을 인용해서 벽면에 붙였다.


이름은 국수집이지만 나는 지금도 그 가게에 김밥을 먹으러 간다.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와야 하는 공간이지만, 내가 일하는 전시 공간은 사람들이 고독을 즐기고 힐링을 하러 오는 공간이며, 잠시 앉았다 가거나 누군가와 함께 와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이며, 놀이를 하기 위해서 오는 공간이며, 유유자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뭐 그러면 또 어떠한가. 이유야 어쨌건, 누군가가 그 곳을 필요로 하고 좋아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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