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뒷산 답사기 : 뒷산 걷기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어릴 적 교과서에는 동네 뒷산의 약수터를 배경으로 한 짧은 일화가 실려 있었다.
지금은 뒷산 체육공원 정도는 될 법한 공간인 이 약수터는 이른 아침 동네 사람들이 약수를 길러 오거나 운동을 하러오는 장소다.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린이들은 지나가는 이웃들에게 인사를 잘 해야 한다는 훈훈한 내용으로 마무리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게는 교과서도 자연스레 등장하는 이 뒷산이 도시와 산이 떨어져 있는 유럽 지역이나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족에게는 이국적인 풍경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한국에는 수많은 뒷산이 있고 우리는 그 산을(낮건 높건, 크건 작건 간에) 뒷산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국토 80%가 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흔치 않은 평야 지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네에는 우리가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뒷산이라고 부르는 산이 하나 쯤은 있을 것이다.
충남에는 실제로 이름이 ‘뒷산’인 산이 있긴 하다. 대구에는 의외로 ‘앞산’이라고 부르는 산도 있다. 동네의 앞뒤를 누가 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한국인은 대부분 산 근처에서 산다는 것은 분명하다. 산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동산도 있지만, 어쨌거나 한국인들은 그것을 뒷산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네팔을 산악국가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한국을 산악국가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요새는 도심에 사는 사람들도 많아졌기 때문에 뒷산이라는 개념이 다소 퇴색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근처에 산 하나 쯤은 있는 도시에 살고 있단 건 분명하다.
도시 안에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관악산, 북한산 같은 산도 있고,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설악산도 있다. 국립공원이거나 대단한 지역 명승지인 산들도 우리 근처에는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산들은 어쩐지 뭔가 마음 먹고 등산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같은 북한산도, 관악산도 동네 뒷산이라고 하면 어쩐지 친숙한 느낌이 든다. 그냥 운동화를 신고 올라가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같은 관악산도 뒷산이 되는 순간 어쩐지 만만해진다. 그것이 바로 뒷산이라는 명칭이 주는 느낌이다.
당연하겠지만 내가 살았던 여러 동네에도 늘 뒷산이 있었다.
어릴 적 살던 아파트 뒤쪽에는 산이 있었는데, 공식적인 이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뒷산이라고 불렀다. 나이가 들어서 살게 된 동네에서는 집 근처에 있는 산을 편의상 ‘뒷산’이라고 불렀다. 직장 때문에 들어와서 살게 된 이 지역에도 뒷산이 존재했다. 물론 방향상은 아파트 앞에 있는 산이지만, 어쩐지 뒷산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뒷산에 자주 간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장소 아이디어가 바닥난 학교 선생님들의 인솔 하에 뒷산을 찾기는 했고, 운동을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서 뒷산에 간 적은 있다. 하지만 직장에 들어가고 부모님에게서 독립해서 살면서 뒷산에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뒷산은 늘 그 곳에 있었고 나는 마음만 먹으면 쉬엄쉬엄 올라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뒷산이란 것은 굳이 시간을 내서 가기에 지나치게 만만했고, 그 만만함 때문에 굳이 갈 마음이 들진 않았다. ‘뒷산 따위’라고 하며 차라리 멀리 있는 유명한 산을 찾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뒷산도 가지 않는 내가 멀리 떨어진 산까지 갈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서 지나치게 만만하고, ‘등산했다’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워지는 뒷산. 블로그에도 올리지 않고, 인스타그램에 굳이 자랑하지도 않는, 친구들에게 ‘내가 말이야, 뒷산에 갔었는데’라고 시작되는 자랑썰을 풀지도 않는 뒷산.
이것은 뒷산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