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흔히 경상도 남자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말 수가 적은, 말하는 데 별 재주도 없고 흥미도 없는 딱 그냥 경상도 사나이.
나도 어릴 때부터 별명이 곰일 정도로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애교와는 담 쌓은 무뚝뚝한 경상도 여자.
그러면서도 남편이 무뚝뚝하고 잔 정이 없는 것이 결혼 생활 20여년 내내 서운하고 못마땅한 모순덩이.
늘 별로 말도 없는 남편이 어쩌다 한번씩 내뱉는 말한마디에 속상하고 삐지고 싸우고 울고...
아이들을 키울 때도,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도 늘 상의하거나 고민을 풀어놓고 대화하기 보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통보하는 일방적인 소통에 불만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적응하고 20년을 넘게 살다보니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받아들이게도 되었지만
그래도 가슴 한 켠에는 앞으로 남은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이 짝꿍과 어느 정도는 합을 맞춰야 인생이 좀 더 편안해지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어 고민이다.
그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자기 일 자기 생활 각자의 인간관계 관리 등을 하느라 서로에 대해 무관심과 방관을 곁들인 적당한 거리두기를 해왔지만 이제 이 곳에선 우리 둘 밖에 없다.
남편은 그래도 회사에 출근해서 직장 동료들이라도 만나지만 나는 만날 사람이 아직 없다.
어쨌든 넷에서 다시 둘이 되었고, 50대에 다시 신혼처럼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다행히 남편도 둘이 잘 지내 보고자하는 의지는 있는 것 같고...
한동안은 정말 30대 결혼 초 첫 신혼때 처럼 남편 아침과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서 출근시켜놓고 저녁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며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 생활이 아직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신혼약빨이 떨어진 건지...
늘 다투던 문제로 오늘도 약간 다투었다.
나는 늘 뭔가에 쉽게 중독상태가 되곤 하는데 주로 드라마라든가 소소한 모바일게임 등에 한동안 푹 빠져서 적당히를 모르고 내리 몇시간동안 내내 매달려 있곤 한다. 나 스스로도 좋지 않은 건 알지만 남편이 그런 내 모습을 보기 싫어하고 간섭하고 심지어 기분 나쁘게 그만 두게 하려고 하면 반발심이 나고 화가 난다. 내가 애도 아니고... 그냥 ‘으이그 못 말리는 마누라’하고 봐 넘겨주면 될 것을 꼭 자기 불편한 마음을 불편한 언어로 표현을 한다.
그래도 이젠 쌓인 경험치 덕분인지 크게 폭발하기 전에 호흡도 생각도 각자 좀 다듬고 조절하면서 마음을, 감정을, 생각을 잘 전달하려고 했다.
같은 말이라도 내 감정이 상하지 않게 조금 더 이쁘게 말하든지 아니면 아예 당신이 그 자리를 피하면 좋겠다고....
싸울 일도 없고 늘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 늘 맑은 날만 있으면 그 지역은 급격히 사막화된다고 어느 유튜브에서 들었다.
문제가 있는데 덮어두고 조용조용히 넘어가기 보다는 오히려 건강하게 잘 싸우는(?) 법을 배우며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깊은 정을 쌓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