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제 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다.
3년을 공부했지만 주 몇시간 한게 다 라 그런지 거의 남은 지식이 없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제 2 외국어 학교교육이 나의 경험과 비슷할 것이다. 아니 독일에서 공부한 우리 딸도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면 외국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남편 덕분에 독일에 가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독일어를 배웠다.
그리고 독일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다.
그러나 나의 독일어 능력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그야말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너 독일에서 몇년 살았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멋쩍어하며 몇년동안 살았다고 얘기하며 그 숫자가 커질수록 부끄러움이 커지는 느낌.
아니 나중에는 뻔뻔해지기로 마음 먹기도 했다.
남편이랑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할 일이 많아서, 신경 쓸 잡다한 일들이 많아서...
이런저런 변명을 갖다 붙이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절실하지도 않고 꼭 해야겠다는 절대적인 동기나 목적이 없으니 공부를 게을리 하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처음에는 이거 원 사방에 보이는 간판에서부터 온갖 단어들이 뜻을 모르는 건 그렇다치고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고, 어디를 가도 누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해서 하루빨리 독일어를 배워야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학원을 다녔다.
감사하게도 독일은 우리같은 이민자들이 일도 하고 독일 사회에 통합(integration) 될 수 있도록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재정적인 지원도 해준다.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혹은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오거나 한 학생들이 내는 돈의 약 20 퍼센트 정도의 비용만 내면 똑같은 반에서 같은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심지어 난민들은 100퍼센트 정부보조금으로 공부하게 해준다.
언어를 배우고 그것을 실제 사용한다는 것은 역시 만만치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나이도 마흔이 넘고 이것저것 정신이 없는 아줌마가 하루에 5시간씩 학원에서 잘 못알아듣는 말을 들으며 이해해보려고 애를 쓰고 떠듬떠듬 질문에 말을 해보려 용을 쓰다가 집에 오면 어찌나 허기와 피곤이 몰려오던지...
아이들이 학교 갔다오면 얼마나 힘들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시키는 숙제도 겨우겨우 해가는 판에 복습하고 배운 걸 연습하고 트레이닝할 시간과 에너지까지는 없었으니 6개월짜리 과정을 중간중간 한두달씩 쉬어가며 1년여에 걸쳐 끝냈지만 B1레벨(초급)테스트를 볼 엄두가 안나서 미루고 미루다 2년이 다 되어 갈 무렵 겨우 테스트는 통과했지만 나는 B1까지 배운 것들을 다 숙지를 못했고 실제 써먹지도 못했다.
좀 자연스러운 화법을 구사하는 단계로 가지 못하고 맨날 "나 이거 원해" "너 이거 해줄 수 있어?" 같은 단순한 구문으로 돌려막기하는 말하기.
듣기는 더 문제였다.
라디오 들을 때나 독일 사람이 말할 때 들리는 몇몇 단어들로 대충 눈치로 때려 맞히고 알아들은 척하는 그 눈치만 늘어났다.
나중에는 아이들이 크니까 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아이들한테 의지하게 되었다.
독일어를 좀 더 발전시켜야지. 꾸준히 계속 공부해야지.
주변의 나와 비슷한 아줌마, 혹은 아저씨들의 돌림노래 혹은 감탄사같은 희미한 소망들.
막독(마지막 독일어)이라는 절박한 이름의 단체채팅방을 만들고 각자 공부하고 주 1회 점검을 하자고 모였던 소그룹도 채 한달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 된 게 불과 1년여 전이었다.
그러다가 또 생각지도 못했던 스페인에 왔다.
또 10년전이랑 비슷한 환경이다.
안보이고 안들리고 말할 수 없다.
나이는 열살이나 더 먹어 쉰이다.
그러나 이젠 뒷바라지 해야될 자녀들도 없고, 한국어로 떠들 수 있는 친구도 없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영어도 독일어도 어중간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이제와서 이 나이에 왠 스페인어?
그러나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치매예방에도 좋다고 하고....
남들은 일부러 돈 들여서 어학연수, 유학도 오는데 어쩌다 얻어진 이 기회를 잘 활용해 보자.
일단은 유튜브 무료 강의를 독학하면서 왕왕초보를 조금은 벗어나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