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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정 Aug 17. 2022

방황은 해도, 방향은 내가 정해

나이 마흔에 말과 글이 어려운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롤로그


봄바람에 흩날리는 벗꽃잎처럼 정신없이 부유하는 말들 중 하나를 겨우 잡아내어 미사여구를 잔뜩 붙인 채 내 말인 양 그럴싸하게 소리를 내기 바빴다. 내가 써온 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적 체득의 결과물을 제대로 씹어 삼켜서 온전히 소화를 시킨 후에 다시 나의 언어로 뱉어낸 것이 아니었음을 고해성사하는 것이다.


그간 난 무엇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살아왔던 걸까. '지식 혹은 경험의 깊이'라는 말이 어색하리만큼 그동안 내가 취한 것들은 그저 떠다니는 잡지식과 얕은 경험에 불과했다. 나의 말과 글은 그것들을 온전히 내 것인 양 말끔하게 포장해서 내뱉은 겉치레쯤 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말 그대로 '척'을 좀 했던 것 같다. 잘 아는 척, 다 아는 척, 통달한 척, 통찰한 척.


하지만 최근 들어서 그것이 진짜 '앎', 혹은 경험적 체득을 통해서 얻어낸 '나의 진짜 언어'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잦았다. 그래서인지 요즘 강의가 두렵고, 글쓰기가 무섭다. 머릿속은 부유물들로 가득 차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써 내려가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하면서 생각과 지식을 말과 글로 내뱉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고, 이러한 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간혹 말을 할 줄 모르고 글을 쓸 줄 모르는 어린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전문 영역의 강의를 유머와 재치까지 겸비해서 청산유수로 잘하는 사람, 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잘 써낸 글을 보면 마냥 부럽고 샘이 난다. 분명 그동안 못한다는 소리보다는 잘한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과거의 자신감은 어디로 도망을 가버린 건지 다시 돌아올 줄을 모른다.


앞서 말했듯 박사과정으로 인해서 나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그사이에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좀 더 높아진 탓일까. 극복해내야 하는 한계임을 머리로는 알지만, 잔뜩 엉킨 실타래마냥 이 문제가 한 번에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사실 요즘 뭘 해도 진도가 영 더디거나, 아예 시작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꾸준히 공부하고 제대로 소화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말하고 쓰다 보면 지금의 두려움이 조금은 해소되려나? 지속할 수 있는 약간의 강제성이 필요해보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기획한 후에 미뤄만 두었던 수필집 집필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사실 '수필'이라는 말이 적합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써보려고 한다. 나의 내면이 이렇게 혼란한 와중에 새로운 도전을 또 하나 한다는 것이 잘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Go!'를 외쳐본다.


마흔인 지금, 20~30대 내내 기획자와 예술가 사이에서 치열하게 방황하며 살아온 날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한 번쯤은 정리를 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은 <(가제)방황은 해도 방향은 내가 정해>이다. '예술가 A의 수첩'과 '기획자 P의 서재', 사실 그 둘은 하나이지만 전혀 다른 입장의 화자가 이야기하듯 글을 써나갈 생각이다.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경험해본 이라면 조금은 공감해주지 않을까.


'삶이 곧 예술이다'라고 외치며, 온전한 나로 사는 삶과 창조적 삶을 꿈꾸며 살아온 나의 이야기. 누가 과연 관심을 가져줄까 싶기도 하지만, 방황과 선택의 연속으로 다져온 20~30대 삶의 여정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부끄럽고 서툴지만 최대한 꾸미지 않고 진정성을 담은 '나만의 언어'로 꾹꾹 눌러서 써볼 요량이니, 넓은 아량으로 어여쁘게 봐주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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