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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들 Nov 01. 2015

“빛나야, 너는 별처럼 빛날 꺼야”

“4월 19일 06:30 뇌사 추정자(남/XX세/사고사)모시러 OOO 병원으로 출발” –장기이식센터-


  4월의 봄은 다른 달의 봄과 다른 2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하는 것들이 진정 무엇인가가 되어 그 누군가에게특별한 존재가 되는 의미,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한 한 아버지가 그 자식을 버리면서 까지 보여준 그 희생적인사랑의 부활이라는 탄생의 의미.


  눈 부신 봄 햇살이 지평선 위로 비추이기 전보다먼저 일어난 19일 토요일 새벽 아침.

지평선 너머 수면 위로 떠오르는 그 봄 기운의 눈부심은 끔찍이 좋아하는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두근거림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설렘을 기다리는 소녀처럼 4월의봄이 주는 의미를 조금이라도 빨리 느끼기 위해 그 날은 유독 일찍 눈이 떠진듯하다. 그리고 그 날 19일은 부활절을 하루 앞 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유독 뭔가모르게 내 마음 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그 어떤 훈훈한 기운이 내 마음 속을 가득 메웠다.그리고 의문을 가졌다. 이오묘한 느낌과 기분은 도대체 무엇일까?


  특별히 정해진 약속이 없었던 날이었기에 ‘오늘 하루를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워보자’라고 다짐하고 다이어리의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나의 핸드폰에서 ‘카톡’이라는메시지 알림의 소리가 났다. ‘누구의 연락이지?’ 라는 생각과함께 ‘혹시 그것을 알리는 연락인가?’라는 두 가지의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런데 그 이른 아침에 내 카톡을 울린 그 연락은 바로 ‘그 것’이었다.

 

“오늘도 그 자리에계시네요, 항상 그 곳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시네요”


  

  수술실 간호사로써 근무한지 3년이 지난 후 일반적인외과수술의 지원 및 신장이식, 간이식 수술을 함께할 수 있는 간호사로써의 역량이 쌓여지자 수술실 간호사의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기이식팀’에 소속이 되었다. 장기이식팀에 처음으로 소속되었던 2013년 11월, 그리고 그 달 11월 3일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이다. 1987년11월 3일 세상이 주는 빛을 처음으로 본 나는 그 이후 2013년 11월 3일에수술실 간호사로써 장기이식팀에 소속되어 처음으로 그 팀의 일원으로써 역할을 하였다. 그날이 비록 일요일이었음에도불구하고 수혜자의 건강상태의 갑작스런 악화로 시간을 다투어 하루라도 빨리 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그래서 예정되었던 것보다 빨리 응급으로 스케쥴을 잡고 간이식 수술을 시행하게 되었다. 내생일 전날에 생체 간이식을 한다는 사실을 미리 통보 받고, 남들이 생각하기에 괜한 짜증이 나는 일에도‘뭐 이런 일 쯤이야’라고 말하면서 쿨하게 넘어가는 나였지만그 때만큼은 나도 모르게 ‘주여’를 외치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준 한 줄기희망의 빛을 잃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고, 나에게일어난 모든 일은 좋은 일이다라는 굳은 믿음의 빛’


“그래, 이것이 나에게 주는 무슨 뜻이 있겠지”


  2013년 11월 3일을시작으로 그때부터 3개월씩의 주기로 한 달씩 장기이식팀에 소속되었다.그리고 그 이후에 아무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모든 동료들이 알고 있는 하나의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종임이가 장기이식팀에속해 있는 달은 뇌사자가 많이 발생한다”

  이 말에 나 스스로도 손 사래를 강하게 치면서 부인하고 싶지만,‘정말 나 때문인가요?’라고 내 자신이 스스로 되물어 그들에게 말할 정도로 나는 정말 누구보다많은 뇌사자의 수술을 맡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상하게도 내 마음 속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더욱 굳세어져 갔다.


“그래, 분명 무슨 뜻이 있을 거야”


  Nursing Presence(간호사와 함께함)는간호사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환자와 함께 있는 것으로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고 내적인 힘을 강화시키는(empowering) 간호중재, 즉,간호사와 함께 환자와 함께 머물러 있는 것.


  이브닝 근무로 가는 오후 출근길 병원 1층 로비에서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로부터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는 ‘1층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동시에 나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고, 그 곳에는 한 번 수술방에서 만난 적이 있는 한 분이 엄마처럼 보이는 한 어른에게 두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면서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얘기하고 있었다. 수술방에 있으면서 수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스쳐 지나가지만 그리고그들을 위해 직접 수술에 참여하지만 그 환자들의 얼굴을 한 사람이라도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바퀴 달린 긴 침대에서 수술실 침대위로 옮겨갈 때 환자의 얼굴을 보는 것이 전부인 수술실에서는 그 환자의 눈빛과표정을 통해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불안감의 감정만 잠시 인지할 뿐 구체적으로 그 사람의 생김새까지 기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방에서 딱 1번 보았고,직접 그 수술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그 수술을 도와주기 위한 도움자의 역할로써 그 방에 들렀던 그 순간에 만난 그 사람을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즉시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1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는 그짧은 찰나의 순간에 그 환자의 몸짓과 얼굴 전체에 퍼져있는 환한 웃음에 매료되었다.

“아아, 조금숨 쉬기 편해졌어요”

  신경외과 방에서 갑자기 외과 수술이 국소마취로 진행 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 수술을 도와주기 위해잠시 들렀던 한 수술방, 들어가자 마자 나는 환자가 가진 풍선같이 터질듯한 큰 배에 놀랐다. ‘아니 배가 어떻게 저렇게 팽팽하게 저렇게 높이 부를 수가 있지?” 남산보다 더 높이 솟은 배를 보면서 단번에 아기가 있는 임신한 여성의 배는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임신한 여성의 배를 제왕 절개술의 수술을 하면서 수없이 봐왔었지만 그 보다 2배나 더 높은 그 환자의배는 우리나라의 제일 높은 산인 백두산에 비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수술방에서는 교수님2명, 임상강사 1명 총 3명이 모여 그 환자가 가지고 있는 shunt를 통해 복강 내에 모인복수를 빼내고 다시 그 복수를 혈관에 도로 넣어주는 시술을 하고 있었다. 1000ml의 빈 Normal saline병에 계속해서 복수는 차여갔고, 급기야는 준비된 Normal saline의 빈 병이 모자라 다른 곳에서 더 구해와야 했다. 많은양의 복수가 갑작스럽게 빠져 나온 탓에 환자는 “춥지 않냐?”라는질문에 “안 춥다”라고 의식적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거의 뼈밖에 남지 않은 그의 사지의 무의식적인 오들 오들한 떨림은 지금 매우 힘든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무언가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그 환자가처한 상황이 비참하고 혹독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태도로 초지일관했던 그 환자는 다른 환자들과 같이 노력하지 않아도쉽게 잊혀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지만 잊을 수 있는 환자, 아니 어떻게 내 삶 속에 그렇게 불쑥불쑥 생각날 수 있을까? 라고나 자신 스스로가 놀랍게 생각할 정도로 첫 만남 이후 참 많이 내 삶 속에 생각이 난 환자. 그리고그 만남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환자를 2014년 4월 19일 저녁 11시에 다시 수술방에서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로써 다시만났다. 나와 그 환자의 재회는 ‘그 것’으로부터 시작되었고,나는 그 환자와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면서 ‘그 자리’를 지켰다. ‘그것’과 ‘그 자리’는나의 내면 깊은 어느 곳에서 늘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받아온 ‘나를 향한 그 무언가의 뜻’을 비로소 깨닫게 해준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환자의 만남이 끝나는 2014년 4월 20일은나보다 나를 더 사랑한 나의 아버지의 그 사랑이 다시금 나타나는 ‘부활절’이었다.


‘밤 하늘을 수놓는 수억 개의 별처럼빛나를 빛나게 해주세요’


  ‘빛나’, 그 환자가 있는 어느 곳,어느 상황에서나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 빛을 냈었던 것처럼 거기에 어울리는 ‘빛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빛나’라는 이름도 참 마음에 들었다.‘빛나’환자와의 만남은 만 3년차 간호사의 마지막을향해가면서 주변의 사소한 것의 감사함을 잃어가는 무미건조하고 황량했던 그 사막 같은 내 마음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와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빛나’라는이름을 두고서 항상 기도한다. ‘빛나가 사막 같은 나의 마음에 한 줄기 오와시스와 같은 희망의 빛을 비추어 준 것처럼빛나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지 주변을 환히 비출 수 있는 빛나는 존재가 되게 해달라고 말이다. 

빛나는 태어나면서 장폐색으로 인한 수술을 받았고 2살때 장간막림프관확장증이라는 병명을 진단 받았다. 이 질환은 희귀난치성중증질환으로의사 경력이 30년 이상인 교수조차도 ‘말로만 듣던 환자를 처음 봤다’고 말할 정도로 드문 질환이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따라다닌 이 질병으로 인해 배 둘레가 120cm이 될 정도로 복수가 차고, 빼내어도 계속 차오르는 상황이반복된 삶을 살았다. 이런 오뚜기와 같은 모습을 계속 마주하면서 자란 빛나는 본인의 모습에 자신을 잃어서대인기피증까지 생겼고, 림프관으로 빠져나가는 심한 단백질의 유실로 인해 다리에 심한 부종이 수반되고전신에 근육이 부실한 상태로 신장은 150cm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식의 어려움과비용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소장이식’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돈 벌면서 일하고 싶어요


  장기이식, 장기이식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장기를 건강한 다른 사람의 장기로 대체, 이식하여그 기능을 회복시키는 의료행위,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치료법’


  더 이상 생존가능성이 없는 장기를 가진 말기질환자들에게‘장기이식’은 유일한 치료법이자 그들이 부여잡고 있는 마지막삶의 희망이다. 장기이식은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가장 아름다운 그 누군가의 선물로써 그 누군가에게 더이상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손에 움켜질 수 있는 ‘보이는 희망’인것이다.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삶 속에서 그 무언인가에대한 의미를 끊임없이 찾게 했던 ‘그것’은 바로 ‘뇌사자 발생으로 인한 장기이식’ 이었다. 그리고 ‘그 것’으로 인해 나는 ‘그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웠고, ‘그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도함께 얻었다.


세상살이 참 힘들지?네 힘으로 안되면 하늘의 힘을 빌려보렴”


  간절함,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한 상태’, 누구나 인생의 한 순간에서 너무나 절박한 나머지 우리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애원하는 어느 한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의 애원은 화살 있는 기도가 되어 우리 삶에 다시 돌아와 영향력을 발휘한다.


 장기이식을 하면서 이식을 받는 모든 환자뿐 만 아니라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침대에 오르는 모든 환자들은 그 누군가를 움직이게 할 정도의 간절함 꿈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빛나를 만나면서 알게되었다. 그리고 간호사로써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간호는 수술 중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간절한 내적인 힘을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돕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길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그자리’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그 간절함에 힘을 더하는 것이었다.


  4월의 봄은 다른 달의 봄과 다른 2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하는 것들이 진정 무엇인가가 되어 그 누군가에게특별한 존재가 되는 의미,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한 한 아버지가 그 자식을 버리면서 까지 보여준 그 희생적인사랑의 부활이라는 탄생의 의미.

빛나의 그 간절함은 우리를 항상 도우시는 그 분의 마음을감동시켰고, 그 감동은 그 분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빛나의내면 깊숙이 자리한 그 간절한 소망에 그 분의 도우심이 합쳐져서 ‘소장이식 성공’이라는 ‘부활의 기적’을일구어 냈다. 소장이식은 이식의 특성상 이식 받기도 힘들고, 이식을하더라도 장기의 특성상 감염위험성이 높아 수혜자로부터의 거부반응 및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 등의 우려가 훨씬 크다.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빛나의 간절함과 그 분의 도우심 앞에서는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그 분이 손을 뻗어 당신을 도와주고 싶을 만큼 간절해지십시오’


  일본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일하는 가?”라는 책에 보면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은 해답을 내놓는다.‘그 분이 손을 뻗어 당신을 도와주고 싶을 만큼 열심히 일하십시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그 분이 손을 뻗어 나와 너를 도와주고 싶을 만큼의 간절함으로 그 사람과 함께하십시오’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간호사는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든 삶의 치유자는 오로지 그 분 뿐이다. 우리 간호사가 해야할 가장 근본적인 일은 그 환자가 가지는 그 간절함에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몸동작으로 그들의 간절함이 꺾이지 않도록 끝까지 그 환자와 함께그 곳에 머물러 주는 것(Nursing presence)인 것이다. 그리고그것은 치유자의 도우심으로만 일궈낼 수 있는 ‘부활’이라는새로운 생명력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근원이 된다.

누구보다 많은 뇌사자들 그리고 이식을 받는 환자들과의만남 때마다 내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 “그래, 이것이 나에게주는 무슨 뜻이 있겠지”의 의미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즉, 이것은 내가 더 나은 간호사로 성장할 수 있는 ‘가르침’이었고, 간호사로써 가져야 하는 ‘치유에대한 의미’, 그리고 간호사로써 끝까지 그들과 함께 있어주라는 ‘내 인생의 소명에대한 음성’이었던 것이다.



  2014년 4월의봄은 다른 봄과 다른 2가지 의미를 주었다. 간호사인 내가환자들과 함께 있음으로 해서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의미,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그 분의 치유의 손길에 참여함으로써 환자들의 의료진이 아니라 그들의 동반자로써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는 의미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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