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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Mar 09. 2024

마음이 답답할 때 난 약을 먹습니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고 해결 보단 대응

그동안 질질 끌렸던 일이 마무리 되고 본 단계로 넘어 갔다. 긴장이 풀리겠지 싶다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 다시 답답해졌다. 점심을 잘 먹었는데도 속이 불편하고 메스껍고 두통에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 다시 시작인가'

집중력이 낮아졌고 모든게 짜증이나고 잠만 자고 싶었다. 자고 나면 세상이 망해있을 거라며.. 아내가 증상을 보고는 소화제를 챙겨줬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되도 증상은 그대로였다. 어깨가 무겁고 열이 났다. 안되겠다 싶어 오후 반차를 내고 집에서 쉬었다. 

그 다음날이 되어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꼬박 하루를 굶었다. 안되겠다 싶어 일찍 회사를 마치고 나와 병원에 가기로 했다. 정신과, 내과 모두 들를 생각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 운전을 하며 법륜 스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첫번째 사연은 사회 초년생인데 윗사람이 빠져서 그 일을 다 안게 되어 부담이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스님은 승진하고 싶냐고 그 분에게 질문을 했고, 그 분은 그렇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또 다시 질문을 던졌다. 위에 사람이 많은게 승진에 유리하냐, 아니면 없는게 유리하냐. 순간 그 분은 '아 그렇군요' 하며 자리에 앉았다.

다음 사연도 같은 사회초년생인데, 자꾸 새로운 일이 맡겨져서 부담이고 스트레스라고 했다. 어찌저찌 해내기는 한다고 했다. 법륜스님은 질문을 던졌다. 

'둘 중 어떤 게 어려울까요? 잘 하는 사람이 못 하는 척하는거, 못 하는 사람이 잘하는 척하려는거'

답을 듣고 그 분도 머리를 긁적이며 무슨 말씀인지 알겠다고 했다. 나 또한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지금 이 회사로 이직한지 겨우 7개월 밖에 안 되었는데, 경력이 좀 된다고 잘 하려는 척을 하려 했었구나. 분명 이 곳만의 문화가 있고 프로세스가 있을 건데. 그걸 알아보기 전에 잘 하려는 척을 하려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건 아닐까 하고.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처방을 받았다. 지난번과 같은 양으로 말이다. 내가 질문했다.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거 같은데. 이렇게 약을 먹어도 되는건가요? 그럼 평생 먹어야 하나요?'

의사선생님이 답을 했다.

'이거는 부작용이 없는 약이구요. 이렇게 생각합시다. 이용한다고. 우리가 눈이 안 좋을 때 안경을 쓰잖아요. 그렇다고 이게 의존증이 있는건 아니잖아요.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바꿀 순 없어요. 그럴 때 마다 이렇게 이용하는 거에요.'

결국 의존증은 아니라는 거다. 내가 심신이 이렇게 태어났으니 바꿀 수는 없고 문득 스트레스로 단기간 힘들 때 이용하면 된다고. 그러기로 했다. 부담감을 내려놓고.

다음으로 내과로 가서 속이 불편한 증상에 대해 처방을 받았다. 약을 처방받기 위해 약국으로 내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오자 나이가 드신 어르신이 내 이름을 부르곤 안경 너머로 물으신다.

'뭐 잘못 드셨어요?'

나는 답했다.

'아니요, 그냥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러자 어르신이 피식 웃으신다. 덩치 큰 사내가 스트레스라니. 별거 아닌걸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느낌이었다. 나도 피식 웃고 그렇게 약국을 나왔다.

시간은 흐르고 분명 내가 손을 내밀면 나를 도와주는 분이 있을거다. 이 기본적인 믿음이 무너지는 때 나는 더욱 내려놓을거다.

집착하는 만큼 고통은 더 커지리니.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고 해결 보단 대응의 영역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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