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이 아닌가벼?
날이 비교적 풀렸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주말에 뭐할까 조잘조잘대다가 등산을 하기로 했다. 장소는 집과 가까운 대전 동학사. 몇 번 오르고 내렸던 곳이라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등산복도 없이 그냥 츄리닝만 입고 살짝 다녀오기로 했다. 내려와서 간단히 막걸리에 파전 먹고 집으로 오는 코스였다.
토요일 아침 일찍 도착하기 위해 잠을 일찍 깨고 준비를 했다. 지난 번 마트에서 사놓고 한 번도 안 신은 등산화를 신었다. 동학사 주차장에 도착해서 간단히 몸을 풀었다. 1시간 정도면 오르기 때문에 가방도 없이 가볍게 올랐다. 아내는 추우니까 따뜻한 물 마셔야 한다면서 가방을 챙겼다. 아무튼 저 가방은 조만간 내가 매게 되겠지. 그래서 많이 챙기지 말라했다.
산을 오르지도 않았는데, 입구 근처에서 몸이 거부를 한다. 갑자기 몸이 무겁고 발바닥도 아픈거 같다. 개의치 않고 앞을 내딛었다. 30분 올랐을까. 머리가 뜨겁고, 발이 차가웠다. 이런. 예전에 한방에서 '두한족열'이라고 머리는 차갑고 발은 따뜻해야 한댔는데. 구호를 외치며 다시 힘을 냈다. '두한족열', '두한족열!' 정신이 나간건 아닌지.
40분 쯤 오르자 바위에 앉아 쉬고 있는 나보다는 젋은 청년 3명을 만났다. 우리가 그들을 지나가자 잡담을 멈추고 우리 뒤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간만에 남자 세명이서 아침에 일찍 모여 등산을 하기로 했나보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게 남 이야기 엿듣는 것이라 했던가.
'야, 너 중학교 때 아버지한테 많이 맞아서 말이 없는 줄 알았다.'
'경민인가? 걔는 요즘 막노동한다던데? 새벽 4시에 일어난대.'
'으이~ 걔는 요즘 그게 정신차린거라 하던데?'
정상에 오를때까지 그들은 쉬지도 않고 대화하며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정상을 앞두고 잠시 쉬어가는 구간에 왔다.
'안 힘들어?'
난 아내에게 세상 가장 부드러운 음색으로 말을 건넸다.
'삶의 무게가 더 힘들다네'
이렇게 대답하더니 곧바로 출발하자 한다. 그러더니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난 다급히 아내에게 소리쳤다.
'거기가 아니라고!'
삶의 무게 탓 하지 말고 방향이나 잘 보고 다니면 좋겠고 한 마디 했다. 얼마나 무거웠으면 방향감각도 잃었을까. 정상은 그리 멀지 않았고 꽤 상쾌한 기분을 만끽했다. 오랜 시간 있지 않고 곧바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이상하리만큼 험했다. 길고 멀고 지루하고. 분명 오르기 전까지는 기대감도 있고 힘들어도 다시 힘을 냈었는데.
목표를 이루고 난 뒤 방향을 잃는 경우가 많다. 때론 그 허무함을 이기지 못해 탈선의 길로 빠지는 사람도 있다. 난 오늘 하루 등산이라는 목표를 설정했지만 그 이후에 대해 생각하지는 못했다. 다만, 온몸이 지쳐 휴식을 취하는게 제일 큰 목표가 되었다.
오늘 나의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오늘은 월요일이니 너무 무리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을 해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