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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Nov 16. 2017

#16 <시선>

만족의 일상화

01 | 충분했다 vs. 한 게 뭐야? 

 

일이 경중을 따지는 건 실제로 무의미하다. 내가 볼 땐 어려워 보이는 일도 당사자는 별일 아닌 듯 해결해 주기도 하고, 반대로 간단하고 쉬워 보이는 업무도 그들에겐 '퇴사'를 생각할 만큼 부담일 때도 있다.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잘 몰라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어렵고 머리 아프고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들에 의지하게 된다. 그것이 분명 신체나 정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라도. 



30대가 되고 프로의 역할을 주문하는 주변의 시선이  나에게 너무 큰 짐이 되었다. 나도 잘 모르는데.. 그래서 아는 만큼 한 건데.. '보이지 않는 시선'은 내게 더욱 완벽함을 기대한다. 때론 밤도 새워보고 주말도 반납하며 당장 나오지 않을 답을 구하는 시늉을 해보기도 했다. 결국 그렇게 호들갑 떨지 않아도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주었다. 늦은 저녁, 미간을 찌푸리며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 나에게 선배가 지나가듯 말했다. 



'퇴근해, 기다린다고 지금 문제가 해결되냐?'



사실 그랬었다. 답을 쥐고 있는 업체의 연락은 다음날 오기로 되어있었고 난 내일 그 답을 들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불안해서 자리에 죽치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쓸데없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 비록 그것이 타인의 기준에 부족할 지라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 30살이 넘어 직장생활 나이테에 한 줄 더 새겼다.



02 | 타인의 평가에 예민해졌다

 

매년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면 회사에서 타인을 평가하는 기간이 돌아온다. 난 아직 동료평가를 받을 만한 위치는 아니다. 팀의 차장급 선배들에 대한 리더십을 몇 가지 항목에 따라 점수를 주고 능력을 평가한다. 1년에 한 번, 냉정하게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나 이 시즌만 되면 평가 대상자들은 왜 그리 나긋나긋해지는지. 괜히 싫은 소리 안 하고 밥도 사주고 그런다. 이번 평가 결과로 그들의 연봉이 오르거나 그대로 되겠지. 나도 저 위치에 되면 저럴까 싶다. 



그동안 쌓인 업무 노하우, 아직 녹슬지 않은 타이핑 실력, 그리고 빠르게 돌아가는 두뇌를 지닌 팀의 허리 역할을 하는 30대 과장이 내 위치이다. 뭐 하나 하더라도 어느 정도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에 업무에 익숙한데, 그만큼 신경을 써가며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래서일까.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보다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와 타인의 평가가 어긋나면 괴롭도록 '짜증'이 났다. 30대가 되면서 뛰는 속도와 거리가 달라지는 또래를 보고 있으면 내가 쳐지고 있는 건 아닌가, 나아가 인생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03 |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이젠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질주하는 100미터 달리기 같은 20대도 아닌데. 정해진 결승서도 없고 바닥에 그어진 줄도 없는데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왜 일까? 나만의 길을 간다는 것. 누군가에게 '모험'이자 '도전'일 수 있다. 요새 회사에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있으면 '이게 내 길이 맞나?' 하며 한숨부터 쉬곤 한다. '퇴사'를 생각하기도 하지만(이 부분은 다음에 다루겠다) 당장 먹고 살 거리가 없다는 것과 명함으로 대표되는 '나'를 잃기가 쉽지 않다. 연차 하나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잠시 머리 식힐 겸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주변을 살펴보곤 한다. 



04 | 정신적인 미니멀리즘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

 

주변을 단순화하고 나아가 몸과 마음을 최소한으로 치장하는 '미니멀리즘'을 접했다. 비록 부작용으로 귀차니즘에 빠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최소 나에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던 효과가 있었다. 내가 사둔 물건 중에는 실제 필요한 것보다 남의 시건에 보기 좋은 것들이 더 많았다. 와인잔, 유행하는 스피커, 옷. '비우면 채워진다'하는 말이 있듯이 나에겐 과도한 주변의 평가와 시선을 마음속에 최소한으로 두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미니멀리즘'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한 일화를 책으로 내고, 반대로 그 책으로 인한 '부'를 얻었다. 어쩌면 '비우면 채울 수 있다'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극도의 미니멀리즘은 지양하지만 정신적인 미니멀리즘은 삶에 필요하다고 본다. 더 요구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삶. 비교로 채워진 인생이 아니라 만족으로 살아가는 중후하고 편안한 40대가 되길 바란다. 수염을 길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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