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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May 22. 2023

첫사랑, 실패한 걸 축하해

처음은 처음이라서, 처음이다.


흔히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들 한다. 보통은 맞는 말이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어렵다. 처음이니까 실수하고, 처음이니까 망설이고, 처음이니까 두렵다. 비단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첫 사업에서 성공했다는 사업가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나. 부모님이 재벌 집 구성원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방법 따위는 상속도 어려운데. 우리 대부분이 첫사랑에 실패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 못한 길을 아쉬워한다. 그 너머에는 분명 달콤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첫사랑이 이루어졌다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나도 그때 그 사람과 만났더라면,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글쎄. 아마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멀티버스를 보여줄 대단한 인피니티 스톤도, 양자역학 기술로 만든 멋진 타임머신도 없으니까. 궁금하다.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


내 첫사랑은 16살에 만난 학원 국어 선생님이었다. 학원을 옮겼던 열여덟 남짓까지 그를 짝사랑했으니, 꽤 지긋지긋한 순애보였다. 선생님은 참 똑똑했고 유쾌했다. 어떤 면에서는 또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 그게 그 선생님을 좋아했던 이유냐면 글쎄. 잘 모르겠지만. 여느 첫사랑과 마찬가지로 난 미숙했고 멍청했다. 마음을 표현할 줄도 드러낼 줄도 몰랐다. 수업 전 음료수를 준비한다거나, 생일날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던 정도. 참 다행인 일이다. 내가 거기서 무언가를 더 하려 했다면, 높은 확률로 흑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령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이어졌더라도 난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만 같아. 우선 선생과 학생의 만남이 그렇게 로맨틱할 리가 없다. 무엇보다 비윤리적이다. 띠동갑에 가까운 나이 차이 때문에 많이 다퉜을 것이다. 몇 번의 연애로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내가 상대에게 많은 상처를 줬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만 생각해 봐도 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첫사랑은 얼핏 로맨틱해 보이지만, 실은 환상 속의 그대 뿐일지도 모른다. 뭐 꼭 내 사랑만 다르겠어. 다른 사람들의 첫사랑이라고 또 얼마나 다를까. 초등학생,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 때 만나 십 년 가까이 잘 만나고 있다는 가정조차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 고등학생의 출산과 육아를 다룬다는 [고딩엄빠] 속 첫사랑 이야기를 듣다 보면 종종 한숨이 나온다. 저게, 과연 우리가 그리던 아름다운 첫사랑의 결말인가 싶어서.


처음은, 처음이라서 처음이다. 그렇게 능숙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그건 첫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첫사랑은 반드시 실패한다. 간혹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사이에는 십 년은 족히 더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첫사랑에 실패했다고? 슬프고, 힘들고, 아프다고? 괜찮다. 반드시 괜찮아질 거다. 그리고 축하한다. 당신은 그 실패 덕에 더 나은 사람이 됐으며,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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