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태현 Jan 03. 2023

그리스도인의 인격 02 절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6-18)



절제는 성공하는 인생의 자격이다     


2012년부터 청년들이 취업을 하면 권해주던 만화가 있었다. ‘미생’이라는 웹툰이었다. 당시만 해도 아직 ‘웹툰’이라는 방식이 생소한 사람들도 있었고, 목사가 청년들에게 만화를 추천해 준다고 하니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윤태호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이전에 윤작가의 ‘이끼’라는 작품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모 포털 사이트에 연재한다고 해서 첫 회부터 빼놓지 않고 읽었다. 전작인 ‘이끼’가 읽으면 읽을수록 조마조마한 스토리였다면, ‘미생’은 읽다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마음에 감동이 있는 이야기였다. 나중에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명작 드라마라고 칭찬을 했고, 나 역시 한 편도 빠지지 않고 시청했었다.     

드라마 미생의 대사 중에서 오 과장이 장그래 사원에게  호되게 야단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계약직에 대한 차별을 항의하면서 자기에게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장그래 사원에게 오 과장은 이렇게 소리친다.     

“기회에도 자격이 있는 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 빌딩 로비 하나 밟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는 줄 알아?”     

나는 이 대사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기회에도 자격이 있다.’ 기회에는 어떤 자격이 있을까?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회를 잘 잡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회의 자격이 있다면 그건 성공하는 지름길이기에 매우 중요한 자격이다.     

한 회사의 정직원이 되는 기회에도 자격이 있다. 오 과장이 말한 자격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는 것일 테다. 아직 성공이라 할 것도 없는, 그저 성공을 향해 시작하는데도 그런 자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성공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문득 고후 4:16-18의 말씀이 생각났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의 자격은 잠시 환난을 받는 것이다. 보이는 세상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것이기에,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기꺼이 스스로 잠깐의 환난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더 큰 승리를 위해 스스로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격을 ‘절제’라고 부른다.

          


절제는 삶을 제대로 사는 최고의 방법이다     


‘유영돈’이라는 분이 쓴 글(유영돈 코치의 브런치, 제대로 살고 싶다면 스스로 유배시켜라)에 보면 소설가 한승원 작가의 말을 인용해서 “제대로 살고 싶다면 스스로 유배시켜라.”라고 말한다. 감옥에서 글을 썼던 신영복 선생이라든지, 세비야의 감옥에서 소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 감옥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버트 러셀, 유배지에서 복숭아 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글쓰기에 몰입해서 500여 권의 책을 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예를 들어서 스스로를 유배시키는 것이 제대로 사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꼭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지혜로운 사람들은 절제야말로 삶을 제대로 사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신앙인들도 그렇다. 제대로 된 신앙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절제한다. 딤후 2:19~21에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신다.”라고 말해준다. 귀하게 쓰는 그릇도 있고 천하게 쓰는 그릇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을 들어 귀하게 쓰시는 분이기에, 자기의 마음과 생활을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절제함으로써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라고 권면한다.     

‘절제’라는 헬라어 단어는 ‘엥크라테이아’(ejgkravteia)라는 말이다. 이 말은 ‘자기 통제’를 뜻한다. 고린도전서 9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절제는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이유는 신앙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대로 된 신앙인이 되려면 절제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셨을 때 제자들과 몇몇 사람들 사이에 소동이 벌어졌다. 한 아버지가 귀신 들린 자기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다. 보통 제자라고 하면 스승이 하는 일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다. 웬만한 제자들은 자기 스승이 하는 걸 어느 정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긴 했지만 제대로 된 제자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주신 후에 제자들이 묻는다. 왜 자기들은 그 일을 할 수 없었느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기도는 무엇이고 금식은 무엇인가?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조율하는 과정이고, 금식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몸을 겸손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자신의 몸과 생각을 쳐서 복종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예수님처럼 살려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절제가 필요하다. 절제는 삶을 제대로 살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삶에 시시각각 찾아오는, 우리를 고통에 억눌린 사단의 백성으로 만드는 귀신들의 능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제대로 살게 하는데 절제는 꼭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인격이다.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M. 스캇 펙(Scott Peck)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심리학과 영성을 가장 잘 조화시킨 인물 중에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쓴 '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ed, 열음사)'이라는 책에서 ‘절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절제를 ‘즐거움을 유보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즐거움을 유보하는 것은 삶의 고통과 기쁨을 적절히 배열하는 과정인데, 삶의 고통을 먼저 접하고 극복함으로써 나중에 기쁨이 배가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즐거움을 유보하는 것, 즉 절제야말로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데도 순서가 있다.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잘 먹는 사람들에게 어떤 순서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삼겹살과 돼지갈비 중에는 뭘 먼저 먹어야 할까? 물론 양념이 되지 않은 삼겹살을 먼저 먹어야 한다. 그러고 난 뒤 양념이 된 돼지갈비를 먹어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훨씬 맛이 덜해진다. 양념갈비를 먼저 먹고 삼겹살을 먹으면 돼지고기 냄새가 더 나고 고기의 맛은 싱거워진다. 엄밀하게 말하면 생고기에 양념을 하는 이유는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함이다. 단편적으로 생각해 보면, 음식의 종류와 양이 한 사람마다 정해져 있을 때, 맛없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맛있는 음식을 못 먹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더 맛있게 만든 음식은 나중에 먹는 것이 좋다.     

우리 삶에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존재한다. 제대로 된 신앙의 삶을 살려고 한다면, 마땅히 뒤에 올 영원한 나라를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유보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절제라고 부른다. 절제야말로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인격이다.

          


절제는 하나님을 만나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이다     


한 젊은 수도사가 스승을 찾아와서는 어디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명상을 하고 고행을 하고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 질문을 받은 스승은 “하나님은 바로 네 옆에 계신다.”라고 말해준다. 젊은 제자는 그런데 왜 자기에게는 하나님이 안 보이냐고 묻는다. 스승은 술에 취한 사람이 왜 자기 집을 못 찾고 헤매는지, 술에 취하면 사람을 똑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비틀거리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젊은 수도사가 대답을 못 하자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너를 취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내야 해.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그 취한 것에서 깨어나야 한단다. 그래야 하나님을 볼 수 있단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우리를 취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마약, 술, 음란함, 권력, 명예, 부, 우리를 취하게 하는 모든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인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보인다. 우리 삶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삶을 살려고 해도, 무언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취해 있다면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가 하나님이심을 알아보고 영접하면 바로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그러니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없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요일 3:2-3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 말씀을 조금 더 깊이 묵상해 보면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인데, 하나님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이 같아서 우리는 하나님의 참모습을 보며 ‘아! 저분이 하나님이시구나!’하고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참모습과 우리의 모습이 다르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려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깨끗하신 것처럼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순결한 나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나와 앉아 예배하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주여! 주여!”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만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누가 일하고 계신,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가? 누가 하나님을 만날 자격을 가진 사람인가? 바로 절제하는 사람이다. 절제야말로 하나님을 만나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인 것이다.          





    

절제는 성공하는 인생의 자격이다. 절제는 삶을 제대로 사는 최고의 방법이다. 절제는 하나님을 만나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성공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기회를 얻기 위해 스스로 불편함에 참여하는 것,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기 위해 잠시의 즐거움을 유보하는 것,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를 취하게 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절제다. 이 절제야말로 우리의 인생을 성공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살게 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인격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