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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하 Nov 08. 2019

19077

20191105

이른 아침 한국을 떠나는 친구를 인천공항까지 픽업을 했다. 한국에서 20여 일 머무는 동안 나 역시 여러 일정이 겹쳐 함께 보낸 시간이 짧아 아쉬웠던 친구, 그래도 가기 전 짧은 며칠이었지만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음에는 그 친구가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를 여행할 계획이다. 페낭을 비롯하여 이포와 루무트, 그리고 팡코르 아일랜드, 친구의 비취 하우스와 쿠알라룸푸르까지. 


친구 픽업하는 길에 마침 본사인 대만 불광산사로 떠나는 서울 불광산사 주지스님이신 의은스님 일행도 공항까지 모셔다 드렸다. 한국에 오신지 20여 년이 넘으셨다는데, 몇 마디 나누던 대화 끝에 스님과 나는 금세 공통분모를 찾아냈다. 

젊은 날 내 어머니처럼 모셨던 노스님이 계시는데, 주지스님께서 그 노스님을 잘 알고 계시며 노스님의 제자 스님들과 지금도 교류를 하고 계신다고 한다. 노스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돌이켜 보면 내 생의 한 시절을 위대한 큰 어른과 대면하며 지냈었다는 게 꿈만 같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자부한다. 


저녁 무렵 급하게 나를 호출해낸 선배는 화가 쌓일 대로 쌓여 폭발 직전이었고, 그 화를 억누르기 위해 빈속에 소주잔만 연신 비워댔다. 화가 쌓이게 된 이유를 들어보니 결국 사람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나는 그저 적당히 호응해주고, 적당히 술잔 부딪쳐 주며 선배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결국 선배는 제풀에 지쳐, 술에 만취해 쓰러진 후에야 홧기가 가라앉았다. 아니 조용해졌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의 스트레스 대처법은 어땠는지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나 역시 가관이 아니다. 성격상 곧바로 풀어내지 못하고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 쌓아뒀다가 참을 수 없을 때가 되면 기억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셔 풀어내려 한다. 단 선배처럼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러진 않는다. 대부분 혼술로 풀어낸다. 그런다고 풀어질 리 없지만 진통제 한 알로 잠시 통증 멈춰지듯 잠시 잊어버리는 데 만족한다. 타고난 성격이니 개선의 여지는 나 역시 없어 보인다. 설령 개선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무뎌지고 그러려니 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이 먹는다는 핑계를 대고. 밤공기가 제법 쌀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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