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큰 행복
셀러브리티의 즐거움 따라 하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취미가 마라톤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도 많은 사랑을 받은 덕분에, 그의 취미도 유명해진 것이다. 하루키도 달리는 취미를 갖고 있다는 건 달리미들에게 즐거운 이야기다. 유명인이 나와 같은 취미를 즐긴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높아지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셀러브리티의 즐거움이 진짜 내 즐거움이 될 수는 없다.
김정운 교수의 명작『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자신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침을 가한다.
자신에 대해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는 것은 사는 재미가 없다는 뜻이다. 모여 앉으면 누가 아파트 팔아서 돈 번 이야기나 주고받는 삶은 삶이 아니다. 자기가 찾은 작은 즐거움에 관해 가슴 벅차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삶이 진짜다.
대통령이 어떻고, 국회의원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진짜 내 이야기가 아니다. '독수리 오 형제', 아니 조류 오 남매'의 이야기일 뿐이다. 가슴 설레는 나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찬 삶이 진짜 재미있는 삶이다.
-김정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진짜 삶은 자신의 즐거움을 찾는 삶이 맞다. 하지만 우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낭비하는 시간 만은 아닐 것이다. 그를 활용해서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다. 그의 사람다움을 느끼고, 나도 함께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그의 일상에 몰입하지 않고 내 즐거움에 집중하면 우상의 일상은 양념이 될 것이다.
4월이 돌아오면, 누가 뭐해도 가장 기다려지는 건 두말할 것도 없이 보스턴 마라톤이다. 내 경우에는, 대충 12월 무렵부터 보스턴 마라톤에 대한 준비를 시작한다. 이 무렵부터 나는 마치 중요한 데이트 전날 오후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져 침착성을 조금씩 잃어 간다.
5킬로미터, 10킬로미터와 같은 짧고 평범한 레이스에 익숙해지려고 몇 번 달려 보고, 1월과 2월에 꽤 먼 거리를 달린 다음 3월경에 한 번 하프 마라톤에 나가 구간에 따른 속도와 컨디션을 조절해 보고 드디어 '정식 시합'에 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일상의 여백 - 마라톤,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 읽기』
하루키의 마라톤 풀코스 준비는 고전에 가깝다. 4개월 전부터 준비를 시작하고, 짧은 거리부터 시작해서 2~3 개월 전에는 조금 더 먼 거리 훈련, 그리고 한 달 전쯤에는 하프 마라톤으로 컨디션 조절.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지만 마라톤 참가비에 대한 예의는 이 정도는 차려줘야 한다. 기록이 욕심이 아니라 완주가 욕심이라도 그렇다.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마라톤 완주를 통해 박수를 받는다면, 그 거리를 달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성취를 가볍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 성취에 담긴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누구나 마음만 먹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만약 하루 만에 누구나 어떻게든 완주할 수 있다면 성취감도 덜 할 것이다.
확실히 큰 행복
결국 구두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차갑게 얼린 맥주 한 잔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일상의 여백 - 마라톤,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 읽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유행시킨 하루키는, 격렬한 운동 이를테면 마라톤 같은 걸 하고 마시는 맥주 한 잔 같은 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도 했다. 아니다. 그건 확실히 큰 행복이다. 무려 마라톤 완주하고 마시는 맥주 한 잔이라니. 세상에 그런 행복이 또 있을까.
인생의 행복감은 큰 행복을 가끔 경험하는 것보다 작은 행복들을 여러 번 경험하는 삶에서 더 크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키는 말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 불리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같은 취미를 가진 달리미로서, 격하게 공감하는 바다.
100일 동안 쓰면 이루어진다!
거꾸로 만드는 100일 기념일, 18일 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