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onuk song Dec 21. 2016

부딪히고 생각하고 실행하다

이커머스, 이제 실전이다! - 독일에서 일하기

반년을 코딩과 포토샵을 배워가며 낑낑대며 혼자 만든 온라인샵이 오픈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어느 날 아침... 회사 전 직원이 모이는 월례회의가 있었다. 어느덧 여섯 번째 월례회의지만, 이 놈의 독일어는 여전히 내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상급반 듣기 시험 마냥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절반 이상 알아듣기 힘들었다.


사전에 언질을 받아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이제 막 오픈한 온라인샵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하지만 독일어를 제대로 못하는 내게 직접 소개하는 기회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저번 주에 온라인샵을 오픈했지? 어때 성과가 좀 있나?"

서툰 독일어로 혹시나 나올지 모르는 질문에 답변을 준비했지만, 사회자는 나를 보여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사이트 독일어 번역을 도와주던 스무 살 갓 넘은 Azubi(학교를 다니며 회사에서 실습하는 Trainee)에게 묻는다.

(언어의 문제이지 인종차별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음... 저번 주에 오픈했고, Rollator(보행보조기)를 하나 팔았지"

다들 웃는다. 자격지심인지... 웃음소리가 내게는 '그럼 그렇지'로 들린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의료 보조기구를 판매하는 회사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보험회사와 연계되어 꽤나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간 성장을 많이 하긴 했지만, 성장의 다른 길을 모색하고자 온라인 판매를 준비하던 참에 내가 그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그렇게 반년 동안 준비하고 사전 론칭 프로모션을 한다고 떠들썩하게 하더니 일주일 동안 제품 하나를 팔았다니 다들 웃었던 것이다.


"음 그런데 한국에서 첫 주문이 들어왔어... 해외 판매야"

그러자 모두가 빵 하고 터진다. 멋쩍은 웃음을 따라지었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사전 론칭 프로모션 홍보를 한국에도 했기 때문이라고 둘러대긴 했었지만, 정말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작년 처음 무급 인턴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에 대해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3개월 후 독일말도 못 하는 외국인이 정식 계약을 하고 온라인샵이라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는 경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오픈을 하고 일주일 동안 제품 하나를 간신히 팔았는데 그게 한국에서 주문이 들어온 거라니...

 

사실 오픈 첫날 부모님이 개시해주신다고 할머니께 드릴 Rollator(보행보조기)를 하나 주문해 주셨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주일간 주문이 없었던 것이다.

 

어디 두고 보자... 내가 이커머스 사업을 어떻게 키워가는지 보여주마...


지금까지는 준비운동이었다면, 이제는 진짜 실전이다. 사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세계 유수의 엄청 비싼 에이젼시들과 함께 일하며 배운 게 헛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삼성전자에서는 워낙 틀이 잡혀 있어서 내가 기여하는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았고, 큰 틀 안에서 일을 하다 보니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전체 그림을 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산업군에서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산업군의 경쟁사들을 분석하다 보니 그동안 배운 단편적인 지식들이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면서 큰 힘을 발휘했다. 게다가 경쟁사들의 디지털 마케팅은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았다. 반응형 웹 조차도 많이 없었고, 웹 다자인도 몇 년 전 디자인이었다. 소셜마케팅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나는 에이젼시 없이 웹사이트 제작부터 소셜마케팅까지 순전히 혼자 다 했기 때문에 벅차긴 했지만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하다 보면 분명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제품 하나를 판 그 첫 달에는 작게 잡은 목표지만 초과 달성하여 1300유로를 팔았고 다음 달에도 초과 달성하여 2200유로, 4000유로, 4800 유로, 8700 유로, 그리고 저번 달에는 매출 12000유로를 찍었다. 아마존에 판매하는 것 까지 하면 20,000유로를 넘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하지만 6개월 만에 이 정도 매출이 나오리라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말까지 월 매출로 만 유로를 목표로 잡겠다고 했을 때 친한 동료들은 말렸다. 아무도 그 정도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무리해서 목표를 잡을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회사로서도 최소한 그 정도는 팔아야 내 인건비를 건질 수 있었기 때문에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https://www.philmed24.com

6개월 전 월례회의 사회를 보던 그 사람이 내 방에 와서는 이제 붙박이 팀원이 된 그 Azubi에게 묻는다.

"온라인샵 잘 된다며?"

"이제 우리 사람 더 뽑아야 돼요. 인보이스 발행할 사람만 따로 있어야 될 정도예요" 

그 사회자는 깜짝 놀라며 슬그머니 나간다.


처음 3달간은 주문이 들어오면 내가 직접 창고에 가서 재고를 찾아 포장을 하고 주소를 출력해 박스에 붙였다. 내가 프로세스를 익혀야 앞으로 개선을 해 나갈 수도 있기도 했지만, 안 그래도 혹처럼 없던 일을 회사 기존 업무 프로세스에 얹기가 쉽지 않았다. 창고 담당들하고도 친해져야 했다. 그리고 3개월 후에 매출이 조금씩 늘어나자 배송 업무를 보조하는 사람이 한 명 붙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물건을 부치지 않아도 되어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번 달부터는 창고 담당 중 최 선임이 전담으로 이커머스 주문 배송을 한다. 이커머스 전용으로 창고 공간을 따로 배정받기도 했다.  

회사 사무실동 전경, PHILmed Gesundheit GmbH

사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사장이다. 판매가 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메시지가 뜨니 카칭~ 하고 울릴 때마다 아주 신이 나서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의 부족하고 아직도 어설픈 독일어지만, 어떻게 알아듣는지 내가 하는 말은 경청을 한다. 내년에 사무실 증축을 하면 큰 방을 이커머스 사무실로 내줄 거고 웹디자이너도 뽑고, 사람도 더 뽑아주겠다고 아주 열정적이다.


얼마 전부터는 회사의 기존 영업 프로세스를 온라인으로 전환 작업을 조금씩 하고 있기도 하다. 회사의 가장 큰 수익은 보험회사 고객들로부터 나오는데, 의사 처방전을 보험회사에 보내면 보험회사에서 우리 회사 연락처를 주고, 우리 회사 전화 상담원이 보험회사 고객들을 일일이 대응을 하는 구조이다. 그런데 이 프로세스를 온라인샵으로 가져왔다. 아직 좀 시행착오가 있지만 프로세스를 조금만 더 개선하고 직원들의 이해가 높아지면 내년에는 완전히 온라인으로만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 기존 부서가 전부 이커머스 고객 대응팀으로 전환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다. 왜 잘 돌아가는 일을 복잡하게 하려고 하느냐고 경영진도 관심이 없었다. 기존 팀의 노하우도 프로세스에 녹여 넣어야 하는데 협조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도 사주고 농담도 해 가며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만들어 놓고 보면 단순한 프로세스이지만, 계획하고 시행하기까지 세 달이 넘게 걸렸다.


서른 후반으로 접어드는 때에 만리타국에서 처음으로 작지만 하나의 팀을 꾸리게 되었다.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바라보니, 게으름 피우는 것도 보이고, 동기부여가 안 되는 모습도 보이고, 어떤 업무를 할 때 즐겁게 하는지도 보인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팀장님들 상무님들 부장님들이 어땠는지, 내가 싫어했던 모습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좋았던 모습은 흉내도 내 본다. 창고에 가서 힘든 일은 도와주고, 어려운 일은 내가 먼저 가서 방법을 제안하고 같이 한다. 동기부여를 위해 얘기를 많이 하고 애로사항을 많이 듣는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다. 웹사이트 개선도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새로운 프로세스도 적용해야 한다. 영문사이트도 만들어 시장을 넓혀야 하고, 한국으로도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조급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나는 여러 회사를 겪어 보지는 못 했다. 이전 직장이 첫 직장이고, 그곳에서만 십 년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회사와 다른 점을 얘기 하기에는 내 경험이 미천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무리하지 않은 목표를 세우고, 실현 가능한 계획을 만들며, 차근차근 추진할 수 있는 시간과 경영진의 믿음이 주어지는 것이다. 올해 첫 발을 성공적으로 내딛고, 내년에 한 단계 뛰어오르기 위해서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조급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마음이 편한 만큼 내년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년 연말 월 매출 목표는 십만 유로다. 한 번 해 보자.

https://www.philmed24.com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에서 추구하는 일과 삶의 균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