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창업하기 - artlia
머릿속으로 구상해 오던 사업 계획을 현실 세계로 가져오는 첫 번째 단계는 회사 이름과 로고를 만드는 일이었다. 웹사이트 디자인할 때 색상 등의 디자인 요소나 컨셉이 로고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고, 회사 등록, 세금 번호 신청 등 이어지는 끝없는 등록 절차에서도 이름 없이는 비즈니스를 준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라인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소, 즉 그 이름으로 도메인이 사용 가능한 상태로 비어 있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 첫 단계가 가장 힘들고 오래 걸렸던 일이기도 하다. 발음하기도 좋아야 하고, 로고로 만들었을 때 모양도 예뻐야 하고, 웹 상에서 다른 이미지들과도 잘 어울려야 했다. 그때부터 수없이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입으로 읊어보고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독일에 등록하는 회사이지만, 산업군 특성상 지역 확장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에 특정 언어권이나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이름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art란 뜻의 독일어 Kunst 보다는 영어 단어 art가 들어간 이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트(Art) 앞 뒤로 어울릴 만한 접두사나 접미사를 붙여 보고, art와 어울릴 만한 단어들을 검색해 보았다. heart, participate, cart, mart, atlantic, antactica, atlas 등. 그중에서 사실 처음에 마음에 들었던 이름은 artlas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틀라스(Atlas)와 발음이 비슷해 익숙하기도 하고 짧아서 입에 잘 붙었다. 그런데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름으로 도메인이 이미 등록되어 있어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강의 디자인 시안은 있지만 확정된 것은 없었다. 모양은 어떻게 할까? 이름을 기억하기 쉽게 알파벳으로 로고를 만들까? 이미지를 따로 만들까? 색은 어떻게 할까? 폰트는 어떤 것으로 할까? 찾아보니 산업군과 키워드를 집어넣으면 회사 로고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사이트도 있다. 역시 내가 고민하는 것들은 이미 이전에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했던 수많은 비슷한 고민들과 맞닿아 있다. 그에 맞는 수많은 솔루션들이 이미 나와 있으며, 그것을 이용해 비즈니스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이제야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내가 모르던 세계를 들추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여러 사이트를 둘러봐도 딱히 맘에 드는 것은 없다. 결국은 직접 디자인을 하기로 했다. 심플하고 기억하기 쉽게 알파벳을 기반으로 했고, 대부분 회사 로고가 들어가는 소셜 계정들이 정사각형 또는 원안에 로고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너무 길면 안 되었다. 웹사이트 상단 헤더 부분에도 들어가야 하는데, 높이가 높으면 헤더 부분이 커져서 한정된 스크린에 불필요한 공간을 잡아먹게 된다. 색은 무난하며 주변과 잘 어우러져야 하며, 살짝 포인트를 주되 너무 화려하거나 튀고 싶지 않았다. 여러 시도 끝에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나오고 조금씩 다듬기 시작했다. 구글 검색 시 나오는 Meta Title에서 대문자가 눈에 더 잘 뜨이기 때문에 첫 글자라도 대문자로 쓰는 것이 가시성 측면에서 더 유리 한데, 대문자로 쓰니 영 멋이 나지 않아 모두 소문자로 유지했다. 그렇게 며칠을 끙끙대다 보니, 이제 조금씩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대략의 디자인이 나오고 몇 가지 안 중에서 최종안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주변 사람들 의견이 너무 제각각이었다. "발음이 힘들다.", "이게 더 낫다.", "나는 이게 더 좋은데." 게다가 내 마음에 들던 "artlia (아뜰리아)"는 심지어 3순위였다. 의견을 물어보고 취합하는데 2-3주가 걸렸다. 한 번 결정하면 바꿀 수 없는 이름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최종 결정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러다가 내 회사, 내 브랜드를 만드는데 너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쳤다. 지금까지 회사를 다닐 때는 중요한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몇 가지 타당한 안을 만들고, 경영진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최종 의사 결정자이다. 다른 의견을 참고는 하되, 누군가 결정해 주기를 기다릴 필요도, 다수결로 결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최종 결정한 것이 artlia - Online Art Galeria이다. 앞뒤 음운도 맞고, 디자인도 앞뒤가 어울리며, 무엇보다 내 마음이 제일 많이 가는 이름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 "꽃" 중에서 발췌
회사 설립 준비를 하며, 매출을 시물레이션 하고 비용과 손익을 따져볼 때는 사업 준비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생기고 로고가 나오고 나니, 출산을 기다리는 엄마의 심정이 이럴까? 너는 어떻게 생겼을까? 목소리는 어떨까? 말투는 어떨까? 이름에 인격을 넣기 시작했다. 브랜딩/마케팅에서는 Persona라고 부른다.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는 아니지만, 해외 마케팅/글로벌 마케팅 부서에서 구르며 들은 풍월이 그래도 좀 있다. 마케팅에서 페르소나는 설정하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어떻게 다가가겠다 하는 색깔을 인위적으로 넣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브랜드를 만들고 보니, 이 브랜드의 페르소나를 설정하고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브랜드에 동화되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 나의 철학이 담긴 페르소나가 브랜드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브랜드에 이렇게 인격이 부여되니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artlia(아뜰리아) 로고는 어디에 넣어도 예쁘고, 그 이름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만져볼 수 없는 것은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페르소나는 심리학 용어지만, 왜 마케팅에서 따와서 쓰는지, 이 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마음속으로 깊이 이해가 된다. 이제 artlia(아뜰리아)는 비즈니스 이상의 것이 되어 있었다. 이 이름으로 이제 고객과 거짓을 소통할 수 없게 되었고, 아무 제품이나 판매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둥글둥글한 모양으로, 대문자가 들어가지 않아 권위적이지 않으며, 친근하지만, 너무 나서는 느낌도 아니다. 로고 디자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첫 글자가 투명으로 처리된 것인데, 그래서 어디에 붙여도 어울리고, 주변 환경과 융화된다. 아래 쿠션처럼 꽃을 배경으로 한 그림 위에 두면, 로고 안에 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나무 냄새가 나는 조용한 갤러리에 와서 향긋한 커피 한잔 하며 편안하게 그림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신뢰가 가고, 인간적이며, 거짓 없는 진실된 그런 느낌. 나 말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느껴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도 담아본다.
회색은 무난한 색이다. 웬만해서는 튀지 않고 다른 색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예술작품을 해치지 않는다. 하지만 빨간색이 포인트를 주면서, 나 여기 있어, 그런데 난 신경 쓰지 말고, 그림 잘 보고가. 이런 느낌? ^^
아뜰리아는 한국인 대표와 한국인 디자인 총괄이 운영하는, 독일에 등록된 독일 회사로 전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의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온라인 아트 갤러리이다. 나 같이 아마추어지만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수익을 나눠가지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산업 특성상 경쟁 업체가 많기 때문에 초반에 광고는 필수적이다. 수익의 대부분이 광고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나눠가질 수 있는 수익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본인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어디에 걸었을 때 어울리는지 등 시험을 해볼 수 있는 테스트 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젠가 방문자가 늘고 판매가 늘어나면 고정적으로 수입원이 생기는 것은 덤이지 않을까.
한국 작가분들이 독일 및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도 한다. 한국의 한 갤러리와 협업하여 한국 작품들을 독일에 소개하고, 나아가 유럽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막 오픈 한 아뜰리아는 갓 태어난 아이와 같다. 하지만 갓난아이가 부모의 유전자를 품고 있듯이 최초 설립 멤버들의 이상과 철학을 품고 자라나기를 바란다. 건강하게 잘 키우고 싶은 부모의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