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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흑백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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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림 Apr 19.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지막이 드라마 <시그널>을 보고 있다.<시그널>이 흥미로운 점은 미래를 알게 된 과거의 형사로 인해 바뀌어버린 미래를드라마가 다루고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바뀐 미래는 원래의 그 것보다 나쁘면 나빴지 결코 좋지않은 듯하다. 드라마의 두 주인공으로 인해 원래대로라면 희생되지 않을 사람들이 희생당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강의가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제동장치가 고장 난 기차의 기관사가 자의적으로 핸들을 틀어 다른 생명에 위해를가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로인해 역사의 내용은 바뀌지만 사건의 원인이 되는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근본이 바뀌지 않으므로 희생되지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근본이란, 우리사회가지닌 부조리다. 국가라는 울타리가 존재함에도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국민보다 자본의 편에 선 국가.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약한 국가는 그 존재를 의심받아 마땅하다. 드라마 <시그널> 속 권력자들은 살인을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와도 의기양양한 반면, 권력을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단순 혐의만으로도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린다.


4월 15일 오후 SNS를통해 사진 한 장을 봤다. 사진에는 “2년 전 오늘 이 시간쯤”이라는 주석이 달려있었다. 그리고<시그널>이 생각났다. 드라마처럼과거와 닿는 무전기가 있다면. 2년 전 4월 15일 오후로 무전을 쳐 세월호에 타야 할 사람들을 타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면 모두를 살릴 수 있을까. 그 무전기가 내 손에 있다면 나는 말도 안 되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까. 드라마에따르면 세월호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고 쳐도 그 대신 발생할 다른 참사는 말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국가의미작동이라는 근본원인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참사 이후에도 또 다른 참사가 이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시그널>의 이재한은 말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기억하는 일. 역사를 바꿀 수 없다고 좌절하고 허무함에 빠지기보다 나 한 사람의 기억이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는사실을 깨닫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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