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흑백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관우림 May 10. 2016

국가란 무엇인가?

#1 영화 <캡틴 필립스>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캡틴 필립스>라는 영화가 있다. 리처드 필립스 선장의 화물선 앨라바마 호가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해적들에게 공격을 받는다. 해적들에게 점령당한 앨라바마 호의 선장 리처드 필립스는 선원들을 대피시키고 그들을 대신해 홀로 해적들의 인질이 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화는 리처드 필립스라는 영웅에 집중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인상적으로 본 부분은 필립스 선장이 구출되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영화에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면 그것은 앨라바마 호가 떠나온 ‘미국’이라는 국가다. 필립스 선장과 선원들의 국가는 그들이 해적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빠르게 대처를 한다. 특공대를 소집해 소말리아 해상으로 출동시킨다. 그리고 필립스 선장을 해적들에게서 구출해낸다. 필립스 선장에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강력한 국가가 있었다.


#2 위안부 백서

2014년 5월 외교부와 여성가족부는 5억 원가량을 투입해 ‘위안부 백서’ 발간에 착수했다. 일본이 위안부에 대한 군 개입을 부정하는 ‘고노담화 재검증 보고서’를 발표한지 일주일 후였다. 보고서가 처음 기획된 것은 2014년 초였지만 작성에 착수한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였다. 백서에는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피해사실을 증명할 구체적인 내용들이 담길 예정이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위안부 피해사실을 주장하며 제시할 근거들을 한 곳에 모은다니!

 

하지만 위안부 백서는 우리 정부가 위안부에 대해 작성하는 최초의 보고서다. 이 전까지는 공식자료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나마도 백서에 포함될 대부분의 내용들이 이미 시민사회를 통해 많이 알려진 내용이라고 했다.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의 위안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알린 것이 1991년이고 1992년 1월 이후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수요집회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25년 동안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할머니들이, 국민들이 있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고발할 체계화된 증거물조차 가지고 않았던 셈이다. 예정된 백서 작성 완료 시점은 2015년 7월 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위안부 백서가 공개됐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오히려 2015년 12월 28일 이후부턴 위안부에 대한 말을 국가 대 국가로 다시는 꺼내지 않기로 일본 정부와 마무리 지어버린 것이 대한민국 정부니까.


#3 가습기 살균제

 아담 스미스가 그랬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고려 때문이다.”라고. 기업은 그럴 수 있다. 기업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한없이 문란하고, 자신들이 시장에 내놓은 제품이 소비자의 가장에 들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무지하고 무감각할 수 있다.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행복을 위해 고기를 팔고 술을 팔고 빵을 팔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기업들을 처벌하고 규제로서 이기적인 기업들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그것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막는 국가의 일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어린이 사망자가 처음 보고 된 것은 2006년이다. 그 이후로 여러 차례 비슷한 사례가 이어졌다. 질병관리본부에 의해 역학조사가 시작된 시기는 2011년이 되어서다.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4년 혹은 5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다. 책임자들에 대한 검찰 조사와 규제들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루어지고 만들어지고 있다.

 

재앙은 훨씬 전부터 막을 수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이라는 유독물질이 처음 생산된 것이 1996년이다. 2001년에 옥시가 이 물질을 사용해 가습기 살균제를 시장에 내왔을 때 제대로 된 인증과 검사가 있었다면. 가습기 살균제는 우리나라에서만 판매되어온 제품이다. 다른 나라들의 살균제의 시장 판매에 대한 엄격한 검증제도들 때문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각 법령 규정에 따른 것으로 보이고, 당시 유해물질의 정의나 기준 등에 비춰 볼 때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유해물질로 지정, 관리하지 않은데 대해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국가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명백한 정부 실패다. 2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에 국가가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있어야 할 국가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관리하는 일을 우선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란 말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먹는 밥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