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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이 Oct 27. 2016

39.먼 훗날 당신 결혼할 때 꼭 결혼식에 참석할게요

당신과 나의 교감이 완벽에 이를때

  저 멀리서 류는 홀로 떠 있는 별을 바라보듯이 나를 애처롭게 응시했다.

누군가를 애처롭게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런 나는 류를 알아차렸고, 덩그러니 놓인 내가 바닥을 응시했을 때,

멀리서 눈을 서성이던 류의 모습을 나는 모른척했다.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돌던, 내 마음 한 자락에 쏙 담긴 당신과 나의 첫 교감이었다.

류의 응시는 언젠가 내가 어떤 별을 생각하던 그 모습이었다.     


  저 멀리서 혼자 있는 류의 모습이 눈에 담겨졌다. 류에겐 데칼코마니와 같은 상처가 있었고  그래서 류만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내 가슴패기에도 류의 상처와 같은 어떤 덤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류는 나에게 시를 건넸고 나는 그 시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푸른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오래도록 시인에 대해서, 류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 손에 의해 당신의 얼굴이 구겨 질 때마다, 나는 당신과의 헤어짐을 생각했다.”

이 문장을 류에게 보여 주었더니 류는 “그는 그런 생각따위 하지않는다.”라고 서투른 글씨로 나에게 내밀었다.     


  마음이 옹졸해져, 작은 돌이 잘게 부서지는 날, 그 돌들을 한없이 류에게 던진 날도 있었다.


  저 가까이 류는 홀로 떠 있는 별을 바라보듯이 나를 애처롭게 응시했고, 나는 그런 류가 무서워져 돌들을 거둬 드리고, 당신의 응시를 가까스로 받아들였다.


  당신과 나의 두 번째 교감이었다. 류의 촉촉해지던 눈은 또 언젠가 내가 어떤 별을 생각하던 모습이었다.     


  투정하듯이 그린 하트를 당신에게 내밀었더니, 당신은 내가 그린 하트 위에 더 큰 하트를 그려 나에게 건넸고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그린 첫 사랑의 무늬였다.     


  “먼 훗날 당신 결혼할 때 꼭 결혼식에 참석할게요.”

  “응 그래, 류는 꼭 와야해.”     


  당신을 만난 뒤로 나는 울음소리 내지 않고, 명랑이 높이 떠 다녔고 류 당신을 바라보면 눈 마주치지 못해, 대신 류의 가늘고 하얀 팔을 어루만졌고.

그럼에도 당신과 마주해야 할 순간엔 당신 귀 언저리, 정돈되지 않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 눈이 류의 상처에 머무르게 될 때에는 당신의 손을 이 작은 손으로 감싸 안고 싶었다.


  내가 당신 냄새를 킁킁거릴 때마다 다만 당신은 나의 향기만이라도 눈치 챘으면 좋겠다. 다른 생각 없이 당신 생각만 흠뻑 하고 싶다. 당신 냄새가 좋아 당신 옷을 베고 자는 날이 늘어났고, 매일을 나와의 벽을 마주할 때마다 류는 살포시 나의 팔을 꼬집었다.     


  “당신은 저를 어린아이처럼 보는 거죠?”

  “류, 많은 걸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걸.”     


  류는 알았다는 듯이 싱긋 웃어보였다.     


  온갖 사회적 굴레와 제약에 벗어난다면 당신과 자유롭게 다녀보고 싶다. 자유가 주어진다면, 세상에 나서 살아온 횟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면, 장녀가 아니라면, 여자가 아니라면...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고 마음 끄는 대로 해보고 싶다.     


  류 당신은 흘러가야만 하는 존재였고, 당신과 나의 교감이 완벽에 이를 때, 우리에게는 한 달 남짓의 간격만이 남아 머릿속을 뱅뱅 맴돌았다.      


  류 당신은 간절한 기억이었고, 기억은 결코 붙들 수 없었음에


  당신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떠올리지 않았고, 내 마음 언저리에 류의 형상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류 당신은 흘러가야만 하는 존재였고,


  나는 다만 오랫동안 당신이 나에게 남겼던 그 시인을 사랑했다.     


  그러니까,

  강물은 흐르듯


  우리의 추억도 그렇게, 흐를 것이다.



p.s 당신이 이 글을 보고 눈이 쌜죽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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