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 스토리(1)
혼자, 한 번에 변화를 만드는 건 아무래도 어렵죠.
삶의 골칫거리들을 남의 도움 없이 척척 해결할 수 있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낼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고객이 몰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쩌면 우리의 삶에 놓인 수많은 문제들 중 몇몇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문제들은 홀로 해결하기 어려운, 더구나 한 번의 시도로 해결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문제들일 거에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변화를 이루려면 결코 혼자, 한 번에는 어렵다는 것을요.
서로를 연결하고,
반복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요.
어떻게 하면 더 적은 자원을 들여 반복적으로 해결을 시도하고, 모두의 지혜를 나눌 수 있을까요? 협력적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문제해결 시뮬레이션 툴킷,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가 바로 그런 생각에서 생겨난 요술램프입니다. 램프에서 지니가 척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함께 지혜를 모아 현실에 놓인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해결해보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바로 그렇게 찾아 헤매던 지니라는 것을 알게 만들죠!
하루만에 목표했던 펀딩 금액 100퍼센트를 넘어섰고, 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에디터 추천 프로젝트, 기획전 <일잘러의 고급정보>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의미있었던 것은 유저들의 피드백입니다.
"수많은 워크숍에 참여해봤지만 가장 회의감이 없었던 시간이었어요. 반복되는 담론에 지칠 일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나열하며 느끼는 무력함도 없었어요. 오직 우리가 해결하고 만들어갈 것들, 그 중에서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에 집중했기에 매 순간이 소중했어요.” - 진로 코치 E님
“저를 가만두지 않는 도구였어요. 워크숍의 결과물들을 집으로 가져와 찬찬히 더 들여다보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고, 실제로 그것들을 어떻게 제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진짜 문제들에 연결시킬 수 있을지 움직이게 했어요.” - 아티스트 S님
대안 없는 비판이 아니라 실천적인 액션 플랜을 더 많이 이야기하게 만들고, 빨리 능숙해져 문제들을 해결할 힘을 키워가고 싶게 만드는 도구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는 어떤 툴킷일까요?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만들어진 이 도구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을까요?
문제 앞에서 왜 우울과 분노에 휩싸여야 할까?
이 질문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어요.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의 시작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교육 문제를 이야기하는 한 자리였어요. 문제는 뻔했고, 잘못은 늘 내가 아닌 누군가가 했고, 얻어가는 건 무기력이 다인 그런 시간이었죠. 그런 자리가 처음은 아니었는데 그 날따라 씁쓸하게 다가왔어요. 왜 우리는 교육을 이렇게 무겁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까? 왜 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감정은 유쾌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우울함과 분노일 수 밖에 없을까? 이 질문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어요. '대안을 즐겁게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툴킷 <모레의 학교>를 그렇게 만들게 됐어요. 나중에는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바로 그 툴킷이지요.
오늘의 교육이 정해진 하나의 방식으로 배우고, 내일의 교육이 여러 교육 주체의 등장으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배움의 폭이 넓어진 세상이라면, 내일 다음인 '모레의 교육'은 배우는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한 배움의 형태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세상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고유한 배움을 누릴 권리가 있지 않나. 각자 스스로에게 맞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상상해보는 도구가 필요하다. <모레의 학교>는 그런 생각과 결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툴킷이었고, '미래 교육모델 디자인 툴킷'이라는 단어가 그 툴킷을 잘 설명했던 것 같아요.
내가 놓인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상상은
힘이 없었어요.
참여하는 사람들이 각자 멋지고 매력적인 학교를 디자인하고, 서로 다른 상상을 공유하며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에 신이 났죠.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어요. '와, 이런 학교가 진짜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데 실제로 내가 만들거나 갈 수는 없는 거에요. 쾌적하고 안락한 건물, 다양한 시설, 유능한 교사들, 이런 것들을 쉽게 구할 수는 없잖아요. 꿈의 학교를 만들었더니 진짜 꿈일 뿐인 거죠. 하는 동안은 재밌는데 끝나면 허탈감만 커지고, '그래서, 뭐?'라는 의문이 드니까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아무리 상상을 해도 내가 놓인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무력감만 더 커지는 거니까요.
'다짜고짜 이상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서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해가면서 미래를 만들어가는 툴킷'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나서 허탈감 대신에 내가 놓인 현실에 대한 통찰과 행동이 손에 잡히고, 어서 주변 사람들과 뭔가 해보고 싶은 그런 툴킷 말이에요. 그래서 만들어진 툴킷이 미래의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미래로 향하는 동적인 과정을 상상하는 툴킷, '교육 변화 시뮬레이션 툴킷' <모레의 학교 2.0>입니다. 두 번째 버전인 거죠. 2년이 걸렸고, 콘텐츠의 형식은 물론 디자인까지 모두 바뀌었어요.
경험은 더 쉽게, 스케일은 더 크게
<모레의 학교 2.0>도 그대로 세상에 나올 수는 없었어요. 카우앤독이나 온더레코드 같은 혁신공간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큰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해가다보니 기억하기가 어려워요. 어떤 문제들을 어디까지 해결했는지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점이 아쉬웠어요. 워크시트만으로는 장치가 부족하더라고요."
“교육 문제만 다루고 있는 점이 아쉬웠어요. 툴킷의 본질은 교육 문제만이 아니라 문제 해결 자체에 있다고 느꼈거든요. 문제 카드 주제만 바꾸면 얼마든지 다른 목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말로만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이 발생하고, 풀어낼 실마리를 찾고, 직접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림으로도 그려보면 어떠냐는 시각화에 관한 피드백이 하나 있었고요. 또 문제카드의 내용을 변주해서 문제의 범위를 넓히면 안 되냐는 피드백도 있었어요. 경험은 더 쉬워지고, 스케일은 더 커지도록 말이에요. 듣고 보니까 정말 문제 카드의 내용만 바꾸면 <모레의 학교>가 <모레의 회사>가 되고, 내용을 비워서 자기가 직접 써놓을 수 있도록 바꾸면 <모레의 프로젝트>가 되더라고요.
우리가 더 나은 방식으로 일하고,
배우고, 또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미래를 만드는 툴킷이 되었으면 해요.
<모레의 학교 2.0>이 '시각화'와 '주제의 확장'이라는 두 가지의 큰 변화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 바로 <모레의 학교>의 세 번째 버전,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입니다. 교육, 일, 프로젝트라는 세 개의 패키지를 통해 우리가 더 나은 방식으로 일하고, 배우고,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꿈꿉니다. 대안 없는 비판을 성토하는 시간이 아니라 유쾌한 분위기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만들고 나누는 시간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디자인씽킹의 개념(프로세스 & 마인드셋)들이 많이 들어갔고, 스토리텔링과 비쥬얼씽킹에도 발을 걸쳐서 상당히 거창하고 복잡해보이지만 본질은 단순합니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도구입니다. '시나리오'라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단순히 막연하고 먼 이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과정을 시뮬레이션합니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실제 문제에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고, 아예 현실과 떨어진 가상의 세계관 속에서 자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낯설게 보며 뜻밖의 영감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배움의 실험은 온더레코드에서
툴킷은 목표했던 금액의 240%를 모금하며 성공했고, 후원해주신 분들을 대상으로 온더레코드에서 오픈세미나도 진행했어요. <스토리>, <플레이>, <가이드>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후원해주신 분들이 툴킷을 현장에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플레이> 세션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교육' 버전과 '일' 버전으로 테이블들을 나누고, 실제로 툴킷을 플레이해보며 새로운 학교와 회사를 만들었어요.
여기서 잠깐, 온더레코드는 다음세대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배움을다루는 라이브러리입니다.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를 실험해가는 과정에서 공간 후원, 참여자 모집, 피드백 등 여러 방면에서 큰 도움을 주셨어요. 특히 온더레코드의 첫 기획 프로그램이었던, 배우고 바로 써먹는 '런앤린Learn&Lean'은 모레가 '도구를 통한 배움의 가능성'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데 큰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지요:)
<가이드> 세션에는 상세설명서에도 나오지 않는 노하우들을 듬뿍 나누기도 했어요. 다양한 외부의 재료를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와 콜라보레이션하는 방법, 플레이 시간을 더 줄이거나 늘리는 방법, 더 많은 인원이 함께 하나의 툴킷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 등 질문들에 아낌없이 팁들을 나누었어요. <스토리> 세션에서는 여러 교육 회사에서 학교 안과 밖을 넘나들며 청소년, 대학생, 직장인, 체인지메이커,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 배움을 만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했어요. 어떤 통찰과 아쉬움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어떻게 '도구를 통한 새로운 배움의 가능성'으로 모레를 이끌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죠.
함께, 즐기면서,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해요.
변화를 만드는 건 긴 게임이 될 테니까요.
특히 세미나에서 강조했던 당부의 말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너무 진지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절대로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상상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배우고, 다시 상상하고, 시도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이야기를 거듭 고쳐쓸 때에야 우리가 원하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얘기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도중에 지치거나 힘이 빠져버리지 않게, 놀이처럼 유쾌하게 즐겼으면 좋겠다는 것을요. 바로 그게 툴킷이 게이미피케이션된 이유이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와 <체인지메이커의 장난감> 사이에서 이름을 고민했던 이유이기도 해요.
두 번째 당부의 말은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의사와 체인지메이커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의사는 환자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수술을 하고, 체인지메이커는 문제가 일어나는 현장 안으로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이겠죠. 삶과 사회의 문제들은 같은 문제라도 어떤 맥락에 있느냐에 따라 문제의 성격이 달라지고, 같은 해결책이라도 어떤 맥락에서 펼쳐지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잖아요.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가 다른 문제해결 도구들처럼 문제 자체만 가지고 이성적으로 해결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가려고 시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각자 변화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교류하며, 고쳐 쓸 수 있는,
또 그 과정이 유쾌하고 즐거운
도구가 되었으면 해요.
프로젝트 모레는 지속가능하고 자기다운 개인과 조직의 여정을 지원합니다. 개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조직이 원하는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필요한 경험, 도구, 환경을 디자인합니다. 그 중에서도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는 변화를 가로막는 문제의 해결을 돕는 도구죠.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덜 비장했으면, 문제를 덜 무겁게 느끼고 덜 지쳤으면, 서로 도왔으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자본과 시간을 아꼈으면, 결국엔 각자가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내기를 바랬어요.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각자 변화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교류하며, 고쳐 쓸 수 있는, 이 모든 과정이 유쾌하고 즐거운 그런 도구가 되기를 바라며 만들었습니다.
'조금은 어렵다'는 느낌과
'해볼만하다'는 느낌이 공존하며
늘 반발짝씩 앞서가면서
우리의 이상을 계속 키워주기를 바래요.
사람은 세월이 쌓여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을 때 늙어가는 것이다
이상도 하나의 생명이라서
계속 성장시키지 않으면 죽고 만다
- <변화 속에서>, 박노해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다양한 사람들과의 의견 교환을 통해 실재하는 많은 문제를 더 첨예하게 인식할 수 있고, 문제의식에서 나아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에 대한 상상과 현실에서 대안을 실현할 전략들을 계속해서 개선해나갈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막연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많은 가능성을 놓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체인지메이커의 시나리오>가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은 어렵다’는 느낌과 ‘해볼만하다’는 느낌이 공존하는 이 도구가 늘 반발짝씩 앞서 있어서 우리가 가진 이상을 계속 키워주기를 기대하며, 앞으로 이 도구를 다뤄가는 방법과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한 편씩 연재해나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