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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명 Dec 11. 2015

다이키리 맛은 몰라도 아바나의 맛은 안다.

   어제 요안나 아줌마가 방을 바꿔주었다. 아무래도 부부인 우리가 더블룸으로 옮기면 트윈룸에 다른 손님을 받기 더 편해서인 것 같았다. 방도 더 좋다고 하니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우리는 생각지도 않게 독채를 쓰게 되었다. 방 크기는 좀 더 작았지만 아파트 하나를 고스란히 쓰는 거라 화장실과 부엌, 거실까지 모두 독립적으로 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10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아바나의 전경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있는 대로 늘어져서는 아침을 먹고 다시 누웠다. 사실은 늘어진다기보다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제 좀 무리를 해서인지, 더위를 먹은 것인지 아니면 아침에 마신 커피가 말썽을 일으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밤새 에어컨을 틀고 자서 냉방병이 걸린 것인가? 여하튼 배앓이를 할 것처럼 쿡쿡 쑤시며 아프기 시작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불편감에 몸만 계속 뒤척거렸다. 기나긴 여행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은 게 용했다.   

  누워서 뒹굴거리는 김에 잔고를 계산해보던 나는 문득 예전에 숨겨둔 돈의 존재가 떠올랐다. 남미에서 혹시 강도를 만나면 주려고 만든 가짜 지갑이 있었다. 못 쓰는 카드와 함께 5달러 지폐를 한 장 넣어두었었다. 남미를 떠나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못해도 4쿡은 더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아픈 것도 잊고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나의 기억력을 칭찬했다. 공항에 갈 차비로 20쿡을 빼놓았는데 어떻게든 15쿡으로 협상을 해보기로 하고 그것에서 5쿡을 더 뺐다. 내가 찾아낸 5달러를 환전하고 잔돈을 좀 보태면 인당 5쿡씩 하는 룸바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일단 몸을 좀 추스르고 일어나 숙소에서 가까운 룸바 공연장을 찾았다. 한국 여행객이 남겨놓은 정보집에는 매주 금요일에 룸바 공연이 있다고 적혀있었는데 아직도 그것이 유효한 것인지, 몇 시에 시작하는지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숙소에서 가까운 곳의 ‘엘 파시오 데 라 EGREM; El Patio  de la EGREM’ 공연장을 잘 찾아냈고 공연시간과 가격도 확인해두었다. 

  점심시간에 환전소를 찾은 바람에 고작 5달러를 바꾸려고 땡볕 아래서 삼십 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5달러로 얻게 된 기쁨에 겨워 거리의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렸다. 

  한 블로거가 위치를 애매하게 남겨서 찾기를 포기했던 모네다 식당을 어제 우연히 발견했다. 그런데 ‘close’ 표시가 걸려있어서 혹시 점심까지만 하나 싶어 오늘 다시 들러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다시 찾은 식당은 여전히 닫혀있었다. 가게 안에 인기척이 느껴져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 물으니 식당이 완전히 문을 닫았다는 듯한 몸짓을 보냈다. 모네다로는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인가? 우리가 찾는 모든 곳이 변해있는 것이 이상했다.   

  랍스터를 결국 먹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랍스터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되고 돈이 남았으니 말이다. 그 덕에 플로리디타에 가서 다이키리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이키리의 맛이 궁금해서 헤밍웨이의 또 다른 단골 술집 플로리디타를 찾았다. 그곳에도 역시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플로리디타는 보데기타보다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그래서 가격도 더 비쌌다. 웨이터에게 다이키리가 얼마인지 물으니 6쿡이라고 했다. 두 잔을 시킬 여윳돈은 없었다. 다이키리는 맛만 볼 겸 한 잔만 시키고 한 명은 콜라나 물을 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레스토랑의 분위기상 콜라나 물마저도 비쌀 것이 틀림없었다. 무턱대고 시켰다가 돈이 모자라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웨이터를 불러 또 가격을 묻는 것은 괜히 구차해 보여서 슬쩍 웃으며 메뉴판을 요청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메뉴가 뭐가 있는가, 순전히 궁금해서 보는 사람마냥 여유 있는 척을 했다. 통장에 돈을 두고도 쓰지 못하는 어리석은 여행자들이라니...   

  예상대로 다른 곳에서 1쿡이면 되는 콜라가 무려 2쿡이나 했다. 그런데 메뉴판을 넘기다 보니 ‘다이키리 daiquiri’라고 적힌 메뉴 뒤에 ‘4cuc’이라는 가격이 적혀있었다. 앞에 ‘버진 virgin’이라고 적혀있기는 했지만 분명 다이키리였다. 모히또가 6쿡인 것을 보니 웨이터가 혹시 모히또를 묻는 줄 알고 가격을 잘못 알려주었나 싶은 생각에 얼른 메뉴판을 보여주고 다이키리를 짚으며 다이키리 한 잔, 콜라 한 잔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웨이터는 통에 든 어떤 음료를 믹서기에 얼음과 함께 섞어 넣고는 요란스럽게 갈아내더니 마티니 잔에 툭 담아 내 앞에 내밀어주었다.   

  ‘이것이 다이키리인가?’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던 남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들고 있는 술잔은 모두 연두색이라고 했다. 내 잔에 담긴 것은 주황색이었다. 이상한 느낌에 얼른 한 입을 마셔보니 그것은 그냥 망고 슬러시였다... 맛은 아주 좋았지만 분명 럼이 든 칵테일은 아니었다. 아... ‘버진’은 ‘무알콜’을 말하는 것이었다. 칵테일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다이키리는 그냥 다이키리겠지... 



  차라리 메뉴판을 보지 않고 그냥 주문했더라면...이라는 후회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그제야 바텐더가 똑같은 연둣빛 칵테일을 수도 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눈 앞을 스쳐 다른 손님에게로 나가는 진짜 다이키리 잔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남편은 다이끼리 한 번 맛보는 것보다 얘깃거리 하나 생긴 것이 더 재미있지 않냐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얘깃거리로 삼을 어리석음이 하도 많아서 말이다.   

  그래도 레스토랑에 들른 덕에 신나는 공연을 보았으니 그것으로도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제법 좋았다. 사실 레스토랑을 꽉 채운 시가 연기로 텁텁해진 입을 개운하게 해주기에는 럼이 들어간 다이키리보다 시원한 망고 슬러시가 훨씬 나았을 것도 같았다. 헤밍웨이와 같은 취향을 갖기에는 내가 아직 세상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악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플로리디타의 즐거움도 잠시였다. 레스토랑을 나서면서부터 배가 점점 더 뒤틀리고 아파서 일단 숙소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점심은 랍스터 대신 생새우가 올라간 피자 한 판을 사 먹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그마저도 맛만 보고 자리에 누워야 했지만. 

  앓느라 고단했는지 안 골던 코까지 골며 잠을 잤다. 아플 땐 자는 게 최선이었다. 다섯 시가 거의 다 돼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남편은 그냥 푹 쉬라고 했지만 쿠바의 마지막, 게다가 휴양이 아닌 진짜 여행의 마지막 밤을 숙소에서 어영부영 보낼 수는 없었다. 잠이 깬 이상 숙소에 있어도 아픈 건 마찬가지니 차라리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게 나았다.   

  오전에 위치를 알아둔 덕에 공연장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공연장은 요일마다 서로 다른 공연을 하는 바 bar인 것 같았다. 작은 마당에는 두어 개의 테이블만 놓여있고 5쿡의 입장료를 내면 안쪽의 공연장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작은 무대가 있고 테이블이 가득 놓인 홀에는 앞쪽의 작은 공간만 내어져 있었다. 룸바 공연이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다.   

  비어있던 홀이 조금씩 사람들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닌지, 오랜 친구들처럼 서로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차림새를 보아하니 아바나에서 좀 논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았다.   

  직원이 분명 다섯 시 공연이라고 알려주었는데 여섯 시가 다 되도록 특별한 안내 없이 무대는 비어있었다. 다양한 룸바 가수들의 영상만 TV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득 아바나의 열악한 생활여건이 떠오르며 혹시 룸바 공연이라고 하는 것이 다 같이 모여 TV로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을 보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 스스로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라며 고개를 털고 있을 때쯤 다행히 악단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악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룸바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댄스스포츠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잘못된 생각이었다.   

  아프로 쿠반 스타일 Afro-Cuban style의 룸바는 경쾌하게 공기를 튕겨내는 콩가와 봉고 같은 악기 소리를 바탕으로 시원하게 내지르는 가수들의 노래로 이루어졌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이 벌이는 축제의 소리 같았다. 실제로 ‘룸보, 룸바 rumbo, rumba’가 쿠바식 스페인어로 ‘파티 party’를 의미한다고 한다. 

  노래와 연주에 익숙해질 때쯤, 관객석에 있던 두 남녀가 객석 앞 좁은 공간으로 나가더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스카프를 손에 들고 음악에 맞춰 발을 움직였다.  

  이것이 진짜 룸바 댄스인가? 흔히 보아온 댄스스포츠에서 남녀가 한 몸처럼 붙어서 서로의 움직임을 공유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각자 땅과 하늘을 향해 발을 구르고 손을 뻗어 교감하는 듯한 몸짓을 하다가 간혹 서로를 마주 보고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다. 서로 다가가 마주한 뒤에도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각자의 몸짓에 몰입해 리듬을 탔다. 춤이라기보다 서로를 탐색하며 구애하는 동물의 움직임에 가까웠다. 그리고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환희에 차올라 몸을 부르르 털어내는 듯한 몸짓이 이어졌다. 나는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빨려 들어 동공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공연의 열기가 점점 고조될 무렵에는 객석에 앉아 어깨만 조금씩 들썩이던 사람들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흥이 터져 나온 듯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공연장은 어느새 룸바의 이름 그대로 축제의 장이 되었다. 내가 아바나에서 느낀 알 수 없는 에너지의 근원지에 들어온 것 같았다. ‘야생성’.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야생성이 살아있는 생명력이었다. 내가 살아온 사회, 자본주의와 상업화 사회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무엇이 분명히 있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쾌적하고 편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 제공되는 모든 것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잃어버린 야생성, 그것이 아직 이들에게 남아있었다. 자유로워 보였고 강인해 보였다. 낯선 땅에 노예로 끌려와 살아낸 고난의 세월마저도 빨아들여 생명력으로 승화시킨 것 같았다. 이들의 음악과 노래, 몸짓에 가까운 격렬한 춤은 세상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동시에 살아있음에 대한 환희의 표출이었다.  

  이들과 너무 대비되게 우리는 수줍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어깨를 들썩거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한껏 흥에 겨워있었다.   

  공연은 끝이 났지만 사람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TV에서 나오는 음악으로 춤을 추며 여운을 달래는 사람들을 비집고 밖으로 나왔다. 살금살금 어둠이 내려앉고 조용해진 골목이었지만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배가 아프기는 했지만 룸바의 흥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말레콘 해변까지 좀 걸어 나갔다. 연인과 친구들, 관광객들이 모여 앉은 말레콘의 방파제에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다를 등지고 4차선 도로를 건너 바라본 아바나의 풍경은 또 색달랐다. 낡고 지저분한 건물들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넓고 단정한 방파제와 뚜렷하게 대비되었다. 어쩌면 아바나의 사람들은 매일 저녁 저 꿉꿉하고 고단한 삶의 터전을 빠져나와 탁 트인 바다의 소리에 위로를 받기 위해 이 방파제로 모여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낀 그들의 넘치는 생명력은 화려하지만 낡은 건물들에 묶여있기에는 너무나 강렬한지도 모르겠다. 매일 저녁 이곳으로 나와 바다에 실려 머나먼 곳으로 날아가는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남편도 고단한 여행길에 대한 위로가 절실했는지 방파제에 앉아 상상의 회 한 접시와 소주 한 잔을 차려놓는 시늉을 하며 못내 아쉬워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방파제의 판판한 모양새와 해가 지는 저녁의 바다는 소주 한 잔과 무척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말레콘을 떠나고도 우리는 숙소로 쉽게 돌아갈 수 없었다. 물 한 통을 살 가게를 찾지 못해서였다. 그나마 어렵사리 찾아낸 곳은 시간이 늦어 문을 닫은 것인지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인지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점점 더 아파오는 배를 움켜쥐고 쫓아가는 나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남편은 걸음을 서둘러 골목골목을 뛰다시피 가게를 찾아 나섰다. 나는 남편과 멀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 터덜터덜 발을 끌며 조금씩 멀어지는 남편의 뒷모습만 눈으로 쫓았다. 그런데 그때, 내 앞을 가로지르는 골목에서 걸어 나온 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흠칫 놀란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고 앞만 보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그들을 피하기엔 너무 늦었던 것인지 어느새 두 남자가 내 앞을 막고 서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인사를 하며 국적을 물었다. 그래, 그 정도는 대답해줘도 되겠지. 한국에서 왔다는 나의 대답에 그들은 반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무턱대고 도망을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할 수도 없어 경계의 기운을 잔뜩 풍기며 슬금슬금 걸음을 옮겼다. 두 남자는 건설업에 종사한다며 대뜸 자기소개를 하고는 아바나에 언제 왔는지 마음에 드는지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나와 발걸음을 맞췄다. 한 삼 분쯤을 그렇게 어정쩡하게 걸으며 이야기를 했을까? 이들의 속내를 도통 알 수가 없어 난감해하며 대화를 이어가던 참에 어디선가 남편이 달려와 내 옆에 서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왜?! 누군데?!”  

  언제나 느릿할 정도로 차분하고 감정 변화를 크게 드러내지 않는 남편이 그렇게 흥분한 얼굴은 한 것은 결혼 7년 만에, 알고 지낸 지 12년 만에 처음 보았다. 당장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로 달려오는 바람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해서 그냥 호기심에 말을 건 것뿐이라고 서둘러 막아서야 할 정도였다.   

  사실 당황한 마음보다는 흐뭇한 마음이 더 크긴 했다. 오랜 여행 동안 ‘동지’로 함께 지내오며 나조차도 성 정체성 따위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뭔가 보호받는 느낌이 생소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슬쩍 얼굴이 붉어진 것도 배의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하여튼 두 남자는 남편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기들도 결혼해서 아내가 있고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며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나에게 보였던 표정과 다르지 않은 것을 보니 정말로 나쁜 의도는 없었던 것 같았다. 나도 안심을 하고 보니 그제야 두 남자의 눈빛이며 말투가 키만 멀대같이 큰 소년들 같이 순진하고 선해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서 약간 알고는 있지만 한국사람과 처음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라고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아바나에 대한 이야기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생글생글한 눈빛으로 봐서는 여차하면 함께 식사라도 하자고 할 것만 같았다. 아마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수중에 돈이 있었다면 선뜻 따라나섰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점점 서 있기가 힘들 만큼 아파서 다리만 달달 떨고 있었고, 주머니엔 짤랑거리는 동전뿐이었다. 그들의 말이 점점 귓전만 스치고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두 남자가 아바나에 가볼 만한 곳을 이야기해 주는 틈에 얼른 말을 가로채고는 안타깝지만 우리는 내일 떠나, 다음에 꼭 다시 와서 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가게를 찾는 중이었어! 하고 외치듯 말했다. 그들의 친절에 찬물을 끼얹은 것만 같아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너무 아파서 대화를 더 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기엔 나 스스로가 너무 멀쩡해 보여 거짓말처럼 들릴 것 같았다. 다행히 친절한 두 남자는 그다지 서운해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가게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웃는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 나는 조금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작은 가방을 옆으로 가로질러 맨 채 순진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거리는 쿠바의 친구들과 더 재밌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말이다.   

  저녁나절의 짧은 시간에 아바나의 숨겨진, 진짜 삶의 모습을 진하게 겪은 것 같아 머리가 약간 어질했다. 내가 와 있는 이곳이 대체 어떤 곳인지, 이곳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이곳 사람들이 풍기는 이 기운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우유니의 사막 위에 서 있을 때보다도 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 물을 구해 숙소로 돌아와 누운 나를 남편이 다시 일으킨 것은 무지개 때문이었다. 

  아바나는 나에게 아플 겨를을 주지 않았다.   

  테라스에 나가보니 까삐똘리오와 누런빛의 도시 위로 희미하지만 커다란 무지개가 그려져 있었다. 빛을 잃은 낡은 건물들 위를 크게 감싼 무지개의 색채는 비록 어렵고 고단한 삶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새롭게 시작되는 생명이 이곳에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처럼 생동감 있어 보였다. 또 그것은 우리의 긴 여행의 마침을 축하하며 아바나가 내어주는 선물처럼 따뜻하기도 했다.   

  무뚝뚝하지만 소박한 친절을 베풀어주고, 선뜻 낯선 이에게 술 한 잔을 내어주며,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서 기꺼이 웃음을 지어주는 쿠바 사람들처럼 따뜻한 저녁노을이 짙어지는 풍경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비록 다이키리의 맛은 보지 못했지만 헤밍웨이가 사랑한 쿠바의 맛은 살짝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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