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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명 May 05. 2016

에필로그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과자를 와그작 소리 내어 씹었다. 맥주를 너무 빨리 들이켰나? 온몸이 붕 뜨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조금은 몽롱해져도 괜찮겠지.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남편은 이십여 일 간 중국으로 출장을 떠나 내일 돌아올 예정이다. 나는 바쁘고 정신없던 한 주를 마친 토요일, 아침부터 작정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뜬 후에야 일어나 오래된 드라마를 여러 편 몰아서 보았다. 그러고 나서 고작 한 일이라고는 새로 맞이할 식구를 위해 침구를 좀 만든 것뿐이었다. 나흘 뒤면 ‘영숙이’의 동생이 집에 올 것이기 때문에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겨우 손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마저도 어찌나 넋이 빠져서 했는지 손가락에서 몇 번이나 새빨간 피를 닦아내야 했다. 

  토요일은 역시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지내야 제 맛이다.  

  오랜만에 일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 보니 문득, 1년 전 오늘,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가 궁금해졌다. 분명 로마에서의 부활절은 지났고 아직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지는 않았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여행 계획표를 들춰보고서야 프랑스 떼제 마을에 있었단 사실을 기억해냈다. 분명 1년 전 남편과 나는 별이 쏟아지는 차디 찬 들판 위 텐트 안에서 추위를 떨치려 애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1년이 이렇게 아득하고 긴 시간이었던가? 그 강렬했던 시간들이 이렇게 희미해질 수 있다니... 이렇게 까마득하게 멀어져버릴 수 있다니. 시간의 무서움에 흠칫 놀라 잠시 몸서리를 쳤다. 어쩌면 여행 이후 ‘그녀’가 우리의 삶에 들어왔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아득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2개월쯤 지난 작년 여름이었다. 가족과 함께 심학산 자락에 있는 한 식당을 갔었다. 그곳에서 며칠째 어미 없이 떠돌아다니더라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는데, 세상에... 그 녀석은 사람 손을 피하기는커녕 남편의 부름에 선뜻 다가와 발치에 엎드리고는 꼬리를 살랑거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편과 나는 그 녀석의 예상 밖의 친화력에 홀딱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쉽게 손을 내밀 수는 없었다. 여행의 끝자락에 아이를 가진 후 올해 초에 낳자는 가족계획,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을 알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에 세워 둔, 그저 계획인 그것이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마당에 동물을 집에 들이는 것은 왠지 아이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의미가 될 것만 같았다. 집안 어르신들의 걱정은 둘째 치고서라도 우리 삶의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동시에 갈 수 없는 두 길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아이를 낳는 것과 동물을 키우는 것은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저 나의 근거 없는 운명론적인 예감이 만들어낸 기우인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비겁하게도 결정권을 그 녀석에게로 넘겨버렸다. 차 문을 열고 그 녀석이 올라타면 데려가고 아니면 단념하자고 말이다. 

  ‘그래, 우리가 그 녀석을 선택해서 데려오는 것이 아니다. 그 녀석이 우리를 선택해서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나의 선택권은 아직 사용되지 않고 남아있게 되겠지!’

  우리보다 용감했던 그 녀석은 문이 활짝 열린 우리의 차 안, 완전한 미지의 세계로 망설임도 없이 뛰어올랐다. 집에 오는 동안에도 주눅이 들기는커녕, 온 차 안을 탐색하고 창밖을 보느라 분주했다. 처음 여행길에 올랐던 우리보다 조금 더 당찼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에 들어선 그 녀석은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모든 것이 흡족했는지 거실 한복판에 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는 또 꼬리를 살랑거렸다. 그 태연자약한 모습에 어찌나 기가 차던지... 남편과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목욕을 시키는 동안에도 조금 야옹거리기만 할 뿐 너무나 얌전했고 급한 대로 사 온 사료도 한 그릇 뚝딱 먹어치웠다. 분갈이하고 남은 흙을 적당한 상자에 담아주고 데려가 앉히자 대소변도 시원하게 봤다. 첫날밤이었지만 늘 우리 집에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익숙하게 해내는 그 녀석에게 우리 부부는 금세 온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지나치게 인격화하고 절절매는 것은 질색이라던 남편이 그 녀석에게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름을 지어준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동물병원에 가면 보호자 이름으로 더 많이 검색되는 이름, ‘영숙이’.  

  영숙이가 집에 들어온 이후로는 하루하루가 특별했다. 남편의 커다란 발에 놀라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옆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우스워 한참을 웃고, 외출했다 돌아온 나의 다리에 온몸을 비비다 못해 벌러덩 드러눕는 모습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기 일쑤였다. 캠핑에 데려갔다 사라져서 가슴 철렁한 일도 있었고, 산책이랍시고 나선 길에 숲으로 뛰쳐 들어가 가시덤불에 옷을 뜯겨가며 데리고 나온 일도 있었다. 문틈에 발이 끼어 절뚝거리거나 쓰디쓴 쑥가루를 씹어 거품을 물고 뛰어다녀 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기도 했다. 행여나 잘못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힘이 들어서 이놈을 괜히 데려왔나 싶다가도 새벽녘, 가슴께로 파고들어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밀며 내는 녀석의 가르릉 소리를 들으면 또 한없이 평화로워지고 말았다. 

  나에게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있었나? 힘들고 지치고 화나고 짜증나는 감정들 말고도 이렇게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내 마음 어딘가에 살아있었다니... 함께 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이제 영숙이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비단 영숙이 때문에 시간이 빨리 흐른 것은 아니다. 퇴직금 다 털어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어떻게 먹고살게 될까, 죽기야 하겠냐, 뭐든 해서 살게 되겠지 하는 막무가내의 다짐들이 무색할 만큼 남편과 나는 금세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이전과 같이 혹은 더 바쁘게 살게 되었다. 여행의 첫 발을 내딛기만 하면 마지막 종착지까지 이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처럼 작은 제안을 수락한 것으로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영숙이 밥값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남편은 또다시 네모난, 내 눈에는 늘 비슷비슷해 보이는, 컴퓨터 케이스를 디자인하느라 밤을 지새우고, 나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삶을 다시 어깨에 짊어졌다.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미래를 걱정하고, 여전히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날린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가 오늘 같은 주말을 맞이해 마음껏 게으름을 부리고 술을 한 잔 마신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삶은 완전히 달라져있기도 했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내 삶의 전부인 것만 같았던 이 작은 세상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고, 이전에는 분명 존재했지만 내 삶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영숙이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제 남편과 나는 영숙이를 몰랐던 상태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가 보고 겪었던 모든 것들을 모르는 상태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에 새겨지고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희미해지기는 할지언정 사라지지 않고 불쑥불쑥 떠올라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때로는 사무치도록 그립게 하고, 또 어느 때에는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에 들뜨게 할 것이다. 내가 아이들 곁을 떠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도 그들은 그들의 삶을 계속 살고 있다가 다시 내 삶으로 들어온 것처럼, 우리가 그리워하는 모든 것도 그들의 삶을 계속 살고 있다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지. 지금도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열차 안에는 음식 냄새가 가득할 테고, 로마의 종소리는 울퉁불퉁한 돌길에 튕겨져 골목골목에 울려 퍼질 테고, 프랑스의 떼제 마을에는 별빛이 내려앉아 촛불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수많은 알베르게에서는 활기찬 ‘부엔 까미노 Buen Camino!’가 들려올 테고, 남미의 버스는 여전히 산비탈을 아슬아슬하게 달리고 있을 것이다. 쿠바의 골목에서는 분명 노랫소리가 들리고 춤추는 여자들이 흥에 겨워 있겠지.  

  나는 이제 결코, 그것들을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모든 기억과 함께 존재하는 나의 수많은 감정들도 지워낼 수가 없다. 내 영혼의 발자국이 새겨진 그 모든 것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의 일부로 늘 함께 할 것이다. 그것은 아주 거대한 삶의 변화이다. 

  2년 전엔 우리가 여행을 떠날 줄 몰랐고, 1년 전엔 우리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게 될 줄 몰랐다. 삶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서 두렵지만 그래서 또 흥미롭기도 한 것이겠지. 


  1년 뒤, 우리는 또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숙이
영숙이와 창수
광숙이와 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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