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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ug 15. 2020

운동의 맛, 단쓴단쓴

얼마나 갈지 몰라서 쓰는 운동 일기

 운동을 시작한 지 열흘 정도 됐다. 근육을 찢는 쓰라린 고통에 아파하면서도 무료하고 단순한 일상에 갑자기 활력이 도는 바람에 꾸준히 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허름하고 협소한 곳이긴 하지만 난생처음 헬스장에 등록하고 저절로 흐르는 러닝머신에서 발을 굴러보았다. 아 아니다, 지난주에 난생처음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나 버렸다.

 옛날 옛적 우리 집에도 러닝머신이 있긴 있었는데,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고장 난 친구였다. 그 친구와 합을 맞추기 위해선 전적으로 내 노력만 필요했고 내가 온 힘을 다해 벨트를 밀어야지만 겨우 움직여주어서 뜻밖에도 운동 효과가 높았다. 그러면 뭐해, 힘드니까 오래 탈 수가 없었을뿐더러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어서 운동에 별 관심도 없었다. 아빠는 왜 그 크고 바보 같은 물건을 집에 들였던 걸까. 집에 옷걸이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는데.

 우리 집 러닝머신은 먹통이었고 몸통 색도 바랜 고물이었지만 작은엄마네 러닝머신은 세단 같았다. 올블랙 바디에 세련된 버튼들, 무엇보다 작동하는 온전한 기계였던 것. 버튼을 누르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마치 놀이기구 같았는데 부잣집에 놀러 간 가난한 아이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주눅 들고 소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는 보았겠지만 신나게 뛰어본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난생처음 작동하는 러닝머신에 발을 굴러본 것은 아니지만 난생처음 러닝머신에서 뛰어본 것은 맞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난생처음 헬스장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처음에 한 40분 걷고 내려오니 땅인지 머린지 울렁거렸다. 나름 기계에 끌려가지 않게 힘을 내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다른 문제였나 보다. 어쨌든 촌스럽지만 러닝머신 시승식 같은 기분이라 즐기기로 했다. 한 가지 더 즐기게 된 것이 있는데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로 달리는 내 다리를 훔쳐보는 것이다. 종아리 근육이 세로로 갈라지는 다리가 제법 마음에 든다. 고작 열흘 운동하고 근육 타령이냐고 남편이 비웃을 것 같지만 오늘 욕심내서 평소보다 1분 오래 뛰었다가 여차하면 다리에 쥐날 듯한 느낌이 든다. 나 지금 운동에 매우 진심이라는 말이다.

 뛰면서 좋아하는 작가들의 북토크나 존경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도 이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된다. 요즘 한 책에 한 달 넘게 정체되어 있어서 왠지 마른 기분이었는데 그들의 말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문장이든 웃음이든 진심이든 태도든 뭐라도 건질 수 있어서 좋다. 에어팟 없어서 줄 이어폰 꽂고 듣는다. 여기 헬스장, 허름하고 협소하고 줄 이어폰 이용자도 꽤 많다. 에어팟 유저들은 저기 시내에 넓고 쾌적하고 깨끗하고 배경음악도 나오는 헬스클럽에 모여있겠지. 후후. 거기엔 “이게 잘 안 빠지는데 학생 이것 좀 해주겠나” 부탁하는 할아버지 없겠지. “이건 뭐 하는 거지?” 거의 속마음이 혼잣말로 나온 작은 소리에도 “으응~ 그건 이르케 이르케 하는 거~” 하면서 자기 운동 잠깐 멈추고 알려주는 친절한 할아버지 없겠지. 한 달에 칠천오백 원 내고 내 의지를 걸어둔 여기 이 구멍(가게 말고)헬스장, 나랑 좀 잘 맞는 듯하다. 좁고 낡았지만 부담 없고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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