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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Sep 15. 2020

네가 있는 곳

내가 사랑하는 집


 거의 10년을 기숙사에서 지냈다. 처음엔 ‘소수정예’라는 타이틀에 혹해서였고 그다음엔 아마도 자취할 돈이 없어서였겠고 그 다음엔 숨 돌릴 틈을 찾아 떠났었는데 그곳에서의 역할이 무려 사감이었다. 기숙사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어떤 사람과 내가 성향이나 생활습관이 잘 맞든 안 맞든 같이 사는 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경지에 이르렀다. 아무리 달라 봐야 같은 사람이었고 같이 살아도 따로 살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도 터득했다. 악의적으로 내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너는 너, 나는 나’가 가능해졌다. 어차피 한 몇 개월 후이면 웃으며 안녕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사는 것이므로 너무 부대끼지도 너무 사랑하지도 않는 선을 지키면 그만이었다.

 운 좋게도 지금까지 만났던 룸메들은 모두 상식적인 사람들이라 큰 마찰 없이 지내왔지만 그랬다고 마냥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밖에서 속상한 일을 당하고 눈이 팅팅 부어 들어가면 좀 혼자이고 싶은데, 누가 말 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을 때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해야 했다. 문 걸어 잠그고 들어앉을 방이 절실할 때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약 10년간의 기숙사 생활 후 다시 엄마 밥을 2년간 얻어먹다가 신혼살림을 차리게 됐다. 전직 기숙사 귀신이라 누구와 살아도 무던하게 사는 방법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결혼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었다. 우리가 몇 개월 후에 웃으며 안녕 할 사이도 아니게 되었고 너무 부대끼지도 너무 사랑하지도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 너무 부대끼게 돼버렸다. 30년간 다른 집, 다른 부모님, 다른 형제들, 다른 문화와 다른 교육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란, 다른 성별과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 같은 침대와 옷장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것이란, ‘너는 너, 나는 나’가 불가능한 ‘우리’가 되는 것이란 생각보다 지치는 구석이 많았다. 이를테면 강력한 원 펀치로 녹다운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으로 잽을 맞으면서 약이 오를 대로 오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기숙사라면 전혀 문제 되지 않았을 상대의 혹은 나의 습관과 행동이 신혼집에서는 용납되지 않을 때가 잦았다.

 잘 소화되지 않던 것들도 둘 중 누군가, 또는 서로가 배려하고 이해하고 수정하고 희생함으로 넘길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남편이 며칠 집을 비울 일이 생겼다. 쿨하게 보내주고 혼자 마음 편하게 지내자 싶었지만 퇴근 후 그가 없는 집이, 오늘 밤 그가 오지 않을 집이 낯설었다. 창조 전 공허하고 흑암이 깊은 상태를 조금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가 없는 집이 아무 의미 없이 느껴졌다. 나는 그날 밤 들어올 사람 아무도 없는데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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