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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l 07. 2020

낭만적 사랑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믿음과 노력

아론 벤지이브의 <우리는 왜 이별했을까?>

 사람은 왜 이리도 사랑에 연연하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왜 모든 드라마는 장르를 막론하고 사랑으로 귀결되는지, 왜 대중가요 속 화자는 하나도 빠짐없이 사랑을 했거나 하고 있는지, 다른 이야기는 없는지, 다른 노랫말은 없는지, 지겹지도 않은지,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지만 혼자 물었다. 실제로 그리 지겹지는 않다. 지겨울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지 대중매체 콘텐츠들이 매운맛을 넘어 불맛, 마라맛까지 자극에 자극을 얹어 생산 및 유포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자극적인 사랑 픽션들이 꼭 만들어진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점점 빠르고 쉽고 편리해지는 세상에서 사랑마저도 빠르고 쉽고 편해지는 경향을 모두가 다 느끼고 있을 것이다. 생각도 만남도 관계도 감정도 휘발성이 강한 지금의 지구에서 낭만적 사랑이 지속 가능한지를 묻는 것 자체가 어쩌면 너무 고리타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낭만적 사랑이 왜 굳이 지속되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아론 벤지이브는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낭만적 사랑은 지속 가능하다고 못을 박는다. 역시 꼰대인 건가 싶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그리 고전적이지만은 않다. 온라인에서의 낭만적‧성적 관계와 다수와 합의하에 거리낌 없이 육체적‧정신적 사랑을 주고받는(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폴리아모리와 개방혼까지 논의를 확장한다. 모든 관계의 형태를 소개할 때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해보려는 태도라서 꽤 믿음이 간다.


 책을 관통하며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낭만적 사랑의 가장 이상적인 모양은 서로의 내면에서 최고의 모습을 끌어내 주며 깊이 또 오래 유지되는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모양을 잘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속성과 현상과 변수와 예시를 많이 버무렸더니 거의 500쪽에 가까워졌다(역시 꼰대인가). 그래도 권위 있는 학자가 평생을 고민하고 연구하여 이른 결론인데 그냥 지나치기는 역시 아쉽다. 실은 번역하면서 한숨과 눈물과 육두문자를 흘리고 뱉고 뿌렸는데, 몇 번을 읽어도 노잼이라고 생각했던 이 책을 번역가가 아니라 독자로 다시 읽으니 의외의 문장들에서 멈추어 곱씹게 되더라.


 “국제 사회와 사이버 사회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낭만적 깊이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간헐적이고 즉각적인 성적 강도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고요함과 신뢰라는 열매를 맺는 낭만적 깊이를 여전히 갈망한다. 낭만적 강도와 깊이를 결합하는 일이 이렇게 시급했던 적은 없다. 낭만적 기회의 풍요가 사랑 없이 사는 사람의 수를 줄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복귀를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440쪽)


 코로나 시대에 더 새롭고 중요하게 다가오는 깊이 있는 관계의 가치. 하룻밤은 아무래도 위험하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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