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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l 11. 2020

실패하는 번역가


 “탈락입니다. 이제 내리세요.”

 “네?”

 “허 참, 세우라고요.”


 시험장을 빠져나오고 얼마 안 되어 첫 번째 우회전 도로에서 떨어져 버렸다.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뽑기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는 피했겠다, 침착하게만 하면 통과하겠지 생각하며 운전대를 잡았는데 출발한 지 5분도 안 되어 탈락 선고를 받았다. 처음에는 내가 왜 떨어졌는지 몰랐다. 아빠는 종종 우회전 시 보행자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와 있어도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으면 슬슬 차를 몰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약간 억울해져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 알려주셨잖아요….”라고 항변해보았지만 보행자 신호가 파란불이면 멈추는 게 당연하다고 호통치는 검사관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그만 더 주눅 들고 말았다. 창피함과 억울함이 마구 뒤엉켜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뒷좌석에 타고 있었던 다음 도전자의 주행에 동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좁아진 마음으로 혹시 나를 비웃었다면 당신도 떨어지기를 내심 빌었는데 시동을 꺼뜨리기는 했지만 간신히 합격한 걸 보면 그 사람도 날 비웃을 실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달아오른 얼굴의 열은 내리고 가라앉은 기분은 끌어올려 보려고 들어간 근처 카페에서 ‘나 떨어졌어’라고 문자를 쓰다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토록 단순하고 분명한 실패를 피부로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이전까지는 아주 은근하고 친절한 방식으로 실패를 경험했던 것 같다. ‘죄송하지만’, ‘안타깝지만’으로 시작되는 공지를 통해서나 아니면 아예 언급되지 않음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암묵적으로 알고 잊었던 실패들. 그게 실패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인 사회에서 아이로 학생으로 살다 보니 실패를 직면하기가 얼마나 낯설었으면 고작 운전면허 시험에 낙방하고 울음을 터뜨렸을까.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일인데 그때는 차갑고 건조한 그 ‘탈락’이라는 말이 참 따갑고 야속했었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신학이라는 학문의 너비와 깊이가 나를 무겁게 눌렀고 교회 현장에서도 나는 이상과 현실의 좁아들지 않는 괴리에 점점 위축되어만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공부도 일도 아니라는 판단이 서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제자리만 빙글빙글 돌고 있을 무렵 친구의 권유로 번역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른 적극적인 수강생들에 비해 말도 없었고 실력도 그저 그랬기 때문에 아마 선생님들은 내 이름도 얼굴도 기억 못하실 테지만 운 좋게도 모든 과정을 수료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첫 역서를 출간할 기회가 주어졌다. 실력에 비해 과분한 평가를 받아 얼떨떨했지만 앞으로 꽃길이 펼쳐지리라 기대가 부풀었고 방황하던 딸이 드디어 무언가 제대로 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부모님도 기뻐하셨다. 당시 사용하던 컴퓨터는 대학교 다닐 때 샀던, 일반 노트북보다 크기가 작은 넷북이었는데, 안 그래도 작은 스크린에 화면 분할까지 해가며 작업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어도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한 문장 한 문장 옮겼었다.


 그렇게 시작이 참 좋았다.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일하면서 번역가로서의 삶에 취해있었다. 탈고 후 누리는 몸과 마음의 휴식도 얼마나 달콤했는지, 이 여유를 즐길 자격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묘하게 뿌듯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 기간이 점점 길어져만 갔다. 이제 다른 책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인데 샘플 경쟁에 도전할 때마다 번번이 무소식이라는 착한 방법으로 실패를 거듭 경험했다. 내가 도전한 책이 ‘번역가 선정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면 티를 낼 수 없어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졌다. ‘어떤 분은 3년간의 도전과 실패 후 계약을 따냈다는데 뭐.’ 번역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 꾸준히 우물을 파다 보면 기회가 올 테니 용기 내라고 해줬던 말로 애써 나를 위로했다.


 어느덧 번역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났고 4년 동안 약 네 권의 책에 내 이름이 찍혀서 출간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벌써 네 권이나 되냐고 칭찬해주겠지만 단행본 한 권당 2-3개월의 작업 기간을 고려하면 1년에 적어도 네다섯 권은 맡아야 전업 번역가라고 할 수 있을 테고 그래야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 수 있다. 그러니까 ‘벌써 네 권이나 됐잖아!’는 ‘컵에 물이 거의 바닥만큼이나 남았잖아!’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라는 말이다. 출판사와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활동이 왕성한 번역가를 성공한 번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미생 번역가에게 성공이란 소소하게나마 출간이라고 친다면 나는 평균적으로 일 년에 딱 한 번 성공하고 여러 차례 실패한다. 성공과 성공 사이에 몇 번의 실패가 있어야 하는 걸까. 얼마나 실패해야 겨우 성공을 건질 수 있는 걸까. 계산할 수 없는 확률과 가능성에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어쩌다 발견한 반복된 실패의 좋은 점이 있다. 실패 후 마음 앓이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것. 처음 떨어졌을 때는 그 씁쓸함이 마음에 제법 오래 머물렀고 탈락이 반복되자 ‘또 안 됐어.’ 하며 자괴감에 찌들었지만 그것마저 계속되니 기대감이 사라져서인지 ‘그럼 그렇지’하고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면 그 기회가 몹시도 소중하고 감사했고 꾸깃거리던 자존감의 주름 사이사이가 펴지는 듯했다. 그렇게 4년을 보내니 하다 보면 언젠간 되더라는 막연한 희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싹을 틔운 것 같다.


 얼마 전 넣었던 샘플이 며칠 째 감감무소식이더니 역시나다. 그래도 괜찮다. 실패하자. 두려워 말고 계속 실패하자. 기회는 언젠가 온다. 내가 이 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 나는 실패하는 번역가일지라도 실패한 번역가는 아닐 것이다.


 운전면허 시험에 떨어진 후 나는 다시 도전했고 이번에는 감독관에게 운전 잘한다는 칭찬을 받음으로 실패의 상처를 씻어내고 당당히 1종 보통 면허 소지자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첫 주행에서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아직까지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여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는 일에는 실패했지만 면허증은 사진이 잘 나온 김에 주민등록증 대신 신분증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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