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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l 15. 2020

이미와 아직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딜레마에 빠졌었다. 플라스틱 과잉 소비 문제를 인식하고 재래시장에서 보리를 사다가 물을 끓여 먹기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귀찮고 번거로워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속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게 정말 내 몸에 옳은가 하는 의심이 불쑥 생겨난 후로 우리 집 분리수거함에 생수병이 쌓이고 있다. 지하수에 어떤 화학물질이 녹아들어 있을지, 팔팔 끓인들 100퍼센트 확실하게 제거될지, 제거되지 않은 독성물질이 나와 내 가족의 몸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약 50년 전 미국의 수질·대기·토양오염 수준보다 오늘이 더 나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안전’이나 ‘무해’ 등을 따지기엔 한참 늦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너무 많은 미세 먼지를 들이마셨고 너무 많은 햇반을 돌려먹었으며 바퀴 한 마리 잡겠다고 홈키파를 반 통 가까이 쓴 날도 더러 있으니.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1962년 출판되어 전 세계에 살충제 남용의 피해와 위험성을 알린 책이다. 이 책은 세계인들에게 환경윤리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었으며 우리가 처한 환경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모두를 위한 공생의 중요성과 그 대안까지 고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지속가능한 개발’로 유명한 1992년 ‘리우 선언’까지 이끌어 내는 동력이 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 엄청난 고전이라면 각 잡고 심호흡 한 번 깊게 쉬고 마음 굳게 먹고 읽어야 하려나 싶지만 화학, 의학, 생물학 등 전문 지식이 판을 치는데도 과알못인 내가 답답함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내용은 직관적인데 문장은 아름다웠다.


 자연의 모든 만물은 촘촘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 불편하다는 이유로 일부 혹은 전체를 조절해보겠다는 그 오만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찰나의 편의와 편리를 위해 앞으로 감당해야 할 희생이 너무 아프고 가혹하다. 지금 나의 간편함이 이 세상의 모든 목숨과 앞으로의 생명에게는 불편함이 되는지 모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이기적인가, 아찔하다. 이미 늦은 것 같아 불안해하는 나에게 57년 전 멋진 언니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두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에 등장하는 갈림길과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과가 마찬가지이지는 않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도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p. 305)



새로 이사한 집에는 정수기를 설치했다.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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