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lsavina Jan 28. 2024

93. 엄마와의 데이트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사실 술을 즐기지 않는다.

마시면 나도 모르게 폭음을 하게 된다. 때문에 술 마실 상황을 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때로는 피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오늘처럼 내가 엄마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던 날.

장소는 우리 집 바로 앞. 책과 술이 다 있는 <오운바>

(Own Book and Bar)

아이 대신 강아지 고양이를 끌어안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강아지 고양이를 군대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

내 남동생은 군대에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죽을 뻔했다가

뒤늦게 진상이 밝혀져 살아서 돌아왔다.

내가 첫 아이를 낳고 100일이 채 안 되었던 때였다.

그때 낳은 그 아이가 군대를 가야 할 나이가 되었다.

나라가 갈라지고 전쟁이 나네마네 하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찬성했던 거지같은 정부,

이태원 참사 때 당연히 투입했어야 할 경찰 병력을 빼돌린 정부,

힘없고 빽없는 국민들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아는 정부 때문에

나는 내 아이를 군대에 보내기 싫다.

그래서 취해서 엄마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한살짜리 딸을 인민군 탱크에 잃었던 우리 할머니

어란 여학생 시절 일본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보름을 창고에 갇혀 계셔야 했던 할머니 얘기를 하면서 울었다.

무슨 거지같은 놈의 나라가 바뀐 게 없냐고 울었다.

내 아들을 군대에 보내기 싫다고 울었다.

강선아밴드의 재즈 공연 1

엄마는 안 우셨다.

어린시절 입 덜려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엄마를 강제로 남의 집에 맡겨놓은 적이 있었다.

혼자 힘으로 꾸역꾸역 도로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 얘기를 하는 엄마는 안 우셨다.

내가 엄마 대신 엄마가 흘릴 눈물까지 다 빼며 울었다.

강선아밴드의 재즈 공연 2

그래도 하나는 위안이 되었던 건

소주에 쥐포안주 놓고 울었다면 아마 여기 쓰지 못할 얘기가 됐을 거라는 것. 콥케 루비포트 와인에 글렌피딕까지 앞에 놓고 울었으니까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거다. 평생 와인도 위스키도 모르고 사셨던 분이 우리 엄마다. 이런 날은 드셔도 된다.


집에 돌아오는 길, 달이 핏빛으로 찍혔다. 불길한 징조다. 피 볼 일이 있으려나.

하지만 살다 보면 깨닫게 된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인생길 교통사고가 있다는 걸.

다시 찍은 달 사진은 고요하고 깨끗하다.

이 나라도 저 달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고 깨끗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92. 텍스트의 의미를 결정할 권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