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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Mar 20. 2024

98. 서머타임 (Summertime)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서머타임

팝즐(Pabzzz)이 재해석한 서머타임. 현재는 스포티파이에서만 들을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안에는, 전쟁으로 죽은 한 살짜리 갓난아기 고모도 있고, 엄마 뱃속에서 죽은 여동생도 있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는 두 여자가 나와 함께 내 안에 머물러 있다. 그들의 존재를 알아챈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네 고모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그런데 길에서 울고 서 있는 그 여자애는 대체 누구니? “


소리도 고통도 없이 내 가슴을 찢는 나의 불행. 나의 서머타임.

한편, 돈이 궁한 나는 소설도 가방도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좀 더 돈이 될 만한 것들, 이를테면 나의 불행을 팔아볼까 하는 궁리를 해 보지만, 나의 불행 따위가 비싼 값에 팔릴 리가 없다. 눈물도 없고 비명도 없고 절규도 없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도 없다. 그런 불행에 가격표를 달아 진열대에 내밀어봤자 팔릴 리가 없다. 그리고……그녀들의 존재는 내게 있어 불행이 아니다.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두 여자를 떠올린다. 그 두 여자 때문에, 살아가는 동안 내가 혼자 남을 일은 없는 셈이고 그걸 불행이라 말할 수는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과 이별해야 한다 해도 두 여자는 절대로 나와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 살짜리 고모. 태어나지 않은 여동생.  


어둠을 무서워하는 건 내가 아니다. 나와 함께하는 두 여자들.

잠들어야 할 밤에도 나는 절대로 모든 불을 끄지 않고, 작은 불빛을 남겨 놓는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건 내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두 여자와의 이별이 없다면 그 어떤 이별도 내게는 없다. 음악과 헤어진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별도 없고, 죽음도 없고, 불행도 없는 서머타임.

옷을 눅눅하게 적시는 비와 살을 태우는 햇빛만이 존재하는 서머타임.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계절이 또 다시 찾아오면.


그때는 우리 만나서 손 잡고 다같이 놀자고 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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