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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May 17. 2024

104. 은수저와 파견자들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둘 다 독후감은 이미 썼지만, 둘 다 짚고 가야 할 문제가 있고 우연의 일치인지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 <전체주의>라는 이름의 연결고리.

#은수저와파견자들 #김초엽 #나카간스케

일단 은수저. 사진 1-4.

주인공이 청일전쟁에서 일본일 질 거라 주장하는데(그러니까 속으로만 전쟁에 반대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다수에게 당당히 혼자 맞서는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과연 저기 나오는 선생들처럼 “이상한 놈” 취급하는 선에서 끝났을까? 한국이었다면 돌팔매질 당해서 생명이 위태롭지 않았을까. 요약하자면 전체주의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주인공은 운이 좋았던 걸까. 소설이지만 만약 이게 실화라면, 이 소수자 무사할 수 있었을까.

그 다음으로 파견자들. 사진 5-8.

내가 난해하다고 했던 개념은 한몸에 두 자아 개념이 아니고 범람체의 특성에 관한 개념이었는데..... 개체의 군집으로 존재하는 전체, 개체가 갖는 고유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전체로서의 의식..... 이게 참 난해했는데..... 그게 조화롭게 공존하는 시스템이 계속되면야 좋지만 어느 날, 만약 결국 그 고유한 개별 자아 중 하나가 전체로서의 의식에 대항하기 시작하면? 전체가 그 자아 하나에 복종할 건가? 아니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건가? 여기서 전제는 “개별 자아를 조금만 인정한다”인데 그 조금이 얼마만큼일 것인가, 일단 이것도 난해하지만  결국 섬찟한 것은 모든 자가 자신에게 흡수되어 동화되기를 강요하는(그게 본능이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전체적 의식. 결국은 이게 전체주의의 핵심 아닌가. 너의 자아를 흐리게 만들어 우리에게 흡수되도록 하라. 뭐 소설에서야 늪인, 이라는 또다른 종족을 구현해서 절충안을 제시했다지만...... 개인적으로는 범람체라는 존재의 특성이 무섭게 다가온다. 세상에는 소통과 교류를 거부하고 혼자이고 싶어하는 자아도 많을 텐데.


전체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다수에 의해 소수가 희생되기 때문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약육강식은 자연의 섭리다. 전체주의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맹목성이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투명하게 서로를 들여다보는 의식들의 대동단결. 범람체는 어떨지 몰라도 인간이 그렇게 되고 나면, 그 전체는 결국 하나가 된다. 혼자가 된 전체가 된다. 혼자가 된 존재는 뭔가를 판단할 필요가 없어진다. 제약이 없어지니 선택할 필요도 없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망망대해에서 어느 방향으로 질주해도 막을 존재가 없다. 그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태즈메이니아 섬 원주민의 씨를 말려버린 영국이 있었다. 전체주의의 끝은 멸절이다. 희생시킬 대상이 없으면 만들어서 차근차근 희생시켜 나간다. 단 하나의 존재만이 남을 때까지.


#전체주의 #무거운질문


생각을 하다하다 보니 결국 다다른 곳이 현재의 돌판/하이브 사태인데, 뉴진스의 소속사는 어도어이고 아일릿은 하이브가 아니라 하이브 자회사 빌리프랩. 요약하자면 베낀 건 하이브가 아니라 빌리프랩. 자, 여기서 제국주의 하이브가 개양아치인 이유는, 경쟁사가 될 회사들을 먹어치우고는 자기네 말 잘들을 식민지 회사들을 만들어 내세워서 겉으로는 지원하고 속으로는 착취 내정간섭.... 감이 오시는가. 유사 전체주의 시스템이다. 이 얘기를 굳이 여기서 하는 이유는 우리의 실생활 속에 암암리에 보이지 않는 전체주의의 그늘이 얼마나 짙게 스며 있는지를 좀 느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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