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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n 04. 2024

105. 어느 치마수집가의 일상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시스루와 달라서 안감 기장이 짧은데도 다리 라인이 드러나지 않는 레이스 스커트. 올이 굵어 하늘거리지 않는다. 맘에 쏙 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크롭 팬츠에 카고바지 조합(뉴진스 하니 같은)과 레이스 샤랄라는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뼈대가 가늘고 허리가 잘록하며 날씬해야 한다는 것. 뚱뚱하지는 않지만 굴곡이 없고 소위 뼈대가 굵은 통나무인 내게는 둘 다 적합한 스타일이 아니다. 사실 옷을 소화해낼 때 단순히 살찐 체형 이상으로 나쁜 게 통나무 체형이다. 여기에 무릎 아래 종아리가 큼지막한 알이 배긴 내게는 사실 그냥 일자바지가 최선이지만 어느 순간 그렇게 나이를 애써 무난힌 복장에 파묻어 버리는 행색으로 다니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욕이야 먹든말든 내 식대로 구해 입어보자는 식이었다. 물론 여기서 내 식대로 라는 건, 스트릿 패션을 눈여겨보다가 저건 되겠다 싶은 걸 채택해서 내 식대로 가지고 있는 옷과 매치해 입는 식이었다. 어차피 튀는 취향 요란한 취향은 아니었으니까 별 표도 나지 않는 나의 취향에 가장 근접한 스타일은 역시 프렌치 시크다. 그래서 별달리 살 게 없는데도 룸페커를 들락거리는 이유는; 프렌치 시크를 표방하는 스타일과 더불어 내가 본 편집샵들 중 디스플레이가 가장  내 마음에 들어서였다.


옷으로 개성과 나다움을 표현하는 건 중요하다. 나다움의 정의를 정할 권리가 남에게 있는 게 아니고 내게 있으니까 더더욱 그렇다. 여성스러운 게 어울리지 않지만 남자처럼 입고 싶지는 않다. 깔끔 단정한 H라인이 어울리지만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못하는 건 싫다. 버스에서 내릴 때 버스 계단에서 인도로 발을 딛기 위해 다리를 얼마나 넓게 벌려야 하는지 안다면(저상버스 제외) 치마를 만들 때 그 따위로 만들지 않을 텐데, 라든지. 롱스커트 기장을 잘못 잡으면 계단을 오를 때 스커트 자락이 발에 밟혀 자칫 발을 헛디디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던지. 치마를 입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이런 것들을 배웠다. 불필요한 모험을 왜 하냐 그냥 바지 입지 하고 묻는다면 님들도 나처럼 주 6일을 목늘어난 오천원 티(이젠 육천원)에 검정바지 두장 세 장 돌려입는 생활을 해 보시라고. 질리나 안 질리나. 막 빨아입기 좋은 면티에 매치할 수 있는 “없어 보이지 않는”아이템은 어쨌든 치마였다. 그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시선을 분산시키고 체형을 커버해준다.


삶의 질, 이라는 부분에서 옷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 요건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받는 설움을 이십대 중후반까지 아주 처절하게 겪었었다. 삼십대 중반 이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빠지지 않을 정도로는 입게 되었다지만 스타일을 찾고 나다움을 표현한다는 차원은 또 다른 문제다.


여러가지를 시도해본 바, 하나씩 둘씩 버려지는 스타일들이 생긴다. 패션의 본질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다. 똑같은 샤랄라라도 플리츠, 캉캉, 샤스커트, 시스루, 레이어드 등등은 피한다. 간혹 아주 예외적으로 멋진 치마들을 보면 의상이 아니라 보배구나 싶다. H러인의 경우는 되도록 스판원단을 고른다. 군살 많은 통나무 몸매로는 달리 답이 없다. 밥을 먹으면 배 전체가 과하게 부푸는 편이라 거의 열에 아홉은 밴딩인데, 지퍼 치마의 경우는 지퍼 고장으로 썩는 골치도 만만찮다. 같은 이유로 청치마도 안 산다. 생각보다 불편하다. 뒤집어집 종 모양 라인이나 벌룬 라인이 취향에도 체형에도 맞는데 생각만큼 찾기 쉽지 않다. 자, 치마라는 주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란 이렇게나 다양하다.

#어느치마수집가의일상


그래서, 앞으로는 그렇게 많은 치마를 살 일은 없겠지만 안 산다는 장담은 못하겠다. 간혹 발견하는 웰메이드들이 주는 감동이 크기 때문이다. 그 정도 사치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글쎄. 시간이 지나면 집착의 대상은 또 치마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갈 테지만. #사람은아니기를 #이제는싫다 #사람에게집착하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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