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온 더블록, 이인아교수
'기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당신은 ’ 과거‘가 떠오르는가? ’ 미래‘가 떠오르는가?
기억은 과거를 위한 것일까? 미래를 위한 것일까?
기억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혹은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정도로 나온다.
기억은 배움이나 경험, 느낌, 깨달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것들이 살면서 우리 개인에게 천천히 영향을 미치므로 기억은 또한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체성과도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서울대학교 뇌 인지과학과 이인아 교수님이 출연하셨다.
이인아 교수는 해마 연구의 권위자라고 한다. 해마는 우리 뇌에서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해마가 손상되면,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마가 손상된 사람은 지금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할 수는 있지만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없다. 어제 친구와 함께 했던 산책, 가족과 함께 하는 오늘의 행복한 시간을 연결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해마가 손상되면 스토리와 맥락이 없어지고 그 순간에만 살게 된다고 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것으로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해마가 가장 먼저 손상이 된다. 자기의 정체성으로 갖고 있던 기억들이 서서히 사라지며, 주변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럴 때 우리는 여러 복잡한 의문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그는 과연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인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00년작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단기기억상실증이다.
사고로 뇌에 손상을 입은 그는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10분이 지나면 기억을 잃는 그는 아내를 죽인 인물을 추적하기 위해 중요한 정보는 메모하고, 사진을 찍고,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0분이 지나면 그의 기억은 리셋된다. 그는 자신의 메모, 문신의 의미를 생각하며, 다시 계획을 세우고 사건을 추적하는 행위를 반복해야 한다.
기억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인간에게 기억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 해마는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해마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한 번만 겪어도 다 기억하고 기록한다. 이렇게 평생 쌓은 기록을 토대로 앞날을 예측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인아 교수는 그래서 해마는 과거를 떠올리기 위한 영역이라기보다는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영역이라고 말한다. ‘기억’하면 우리는 대부분 과거를 떠올리지만 뇌 인지과학적으로 기억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기억의 속성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대비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내가 겪은 경험과 기억은 미래를 디자인하고 대비하는 데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해마는 경험을 많이 할수록 세상에 대한 모델이 정교해진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경험, 느낌, 생각들은 기억의 재료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 판단, 사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할수록 내 해마는 세상을 더 유연하고,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지나간 과거의 한 때,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모두 과거가 될 것이다.
좋은 경험과 기억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가끔 나를 살아가게 하는 행복과 기쁨이 되어줄 것이고, 안타까웠던 경험은 미래에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조금은 더 신중하게 판단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모든 기억은 나의 현재와 미래를 만드는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결국 기억은 과거이자 미래이며, 현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