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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Jul 06. 2016

그려낼 자신이 없는 풍경

#28. 취리히, 높은 곳에 올라

객실로 배달된 조식을 먹고 잠에 취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빨리 내리라는 승무원의 질책을 받았다. 변신 로봇을 닮았고, 자는 동안 국경을 넘는 야간열차는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지만 편안한 수면을 보장하지는 못 했다. 떡진 머리, 탱탱 부은 눈으로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다.

15.01.10, 스위스, 취리히 중앙역

중앙역에 짐을 맡기고 시내를 터덜터덜 걸었다. 트램을 피해 길을 건너 취리히 호수까지 걸었다가,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강을 따라 다시 걸어 올라갔다. 시민들의 소득 수준이 높고 여유가 넘치는지, 디자인이 뛰어난지, 공기는 깨끗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계 판매점이 많았고, 스위스 국기는 이뻤으며, 확실히 물가가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5.01.10, 취리히, 그로스뮌스터 성당

그로스뮌스터 성당의 첨탑에 올라서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뭘 해야 할지 까먹은 채로 한없이 바라보았다. 수면에 반사된 빛이 눈을 찔러대기 시작하고 나서야 주섬주섬 노트와 연필을 꺼냈다. 멀리 보이는 꼭대기에 걸린 구름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있다가, 겨우 스케치를 시작했다. 도저히 그려낼 자신이 없어서 겨우겨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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