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야간열차
그 좁은 공간에 모든 것이 오밀조밀. 이곳, 저곳을 열어보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허리도 펴지 못한 채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 어메니티로 제공된 워터젤리를 빨아먹으며 검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인이 된 느낌적인 느낌. 하지만 아쉽게도 창밖은 별이 가득한 우주가 아닌 어디론가 떠나는 누군가가 가득한 비엔나 중앙역이다. 취리히로 향하는 야간열차 EN466은 헛기침을 하듯 한 번 쿨렁, 하더니만 서서히 플랫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야간열차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안 그래도 좁은 땅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 시간 반을 외치며 등장한 KTX는 어렴풋이 남아 있었던 기차여행의 낭만을 깔끔하게 지워버렸고, 노트북과 서류 뭉치가 가득한 출장만 기억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자는 동안 국경을 넘는 야간열차는 특별하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며 신기해할 만 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스케치를 하다가 양치를 하고 세수를 했다. 침대에 올라가서 내일부터 돌아다닐 취리히에 대해 약간의 공부를 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지 이따금씩 귀가 먹먹해져 침을 삼켰다. 눈이 조금 피곤한 것 같아 고개를 돌려보니 낯선 천장이 코앞에 있다. 일어날 때 머리를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