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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May 27. 2016

될 대로 되라지 하루

#26. 비엔나 마지막 날

비엔나를 떠나는 날. 별다른 목적지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가야 할 곳도, 봐야 할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먹어야 할 것도, 들어야 할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약간은 어렵지만 남은 시간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나를 멋대로 내버려 두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시청 건물을 발견하고 멈추어 선다. 멍청히 기대어 서서 시청 건물을 스케치한다. 발끝을 향해 그늘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다. 그걸 알아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난 아직 놀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입가에 미소가 고인다.

15.01.08, 비엔나, 시청

가야 할 곳이 있고 정해진 시간이 있다. 그것은 일상의 법칙이었지만, 여행자의 법칙이기도 했다. 일탈을 찾아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서 또 다른 일정에 매이는 아이러니에 지쳐갈 때쯤이면, 될 대로 되라지 하루를 선물한다. 발길 가는 대로 눈길 멈추는 대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림자가 내 발 밑으로 야금야금 파고드는 것을 볼 수 있고, 골목 사이로 갑자기 튀어나온 성당에 넋이 나갈 수도 있다.

15.01.08, 비엔나, 성피터성당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런 하루가 더 빛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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