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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Jul 25. 2016

그 찬란함 앞에 앉아

#29. 루체른에서 광합성

호숫가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도시를 이동한다. 녹음으로 가득한 기찻길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탁 트인 풍경이 등장할 때면 기차 안은 소란스러워진다. 과연 그럴만한 풍경이구나. 터널과 숲. 계곡과 호수. 빛과 어둠이 반복되고 가벼운 덜컹거림과 함께 루체른에 도착했다. 암호같았던 스위스 철도청 마크의 비밀이 풀렸고, 10일짜리 유레일 패스는 이제 고작 삼 일이 남았다.

15.01.11, 루체른, SBB CFF FFS

도시를 관통하는 물줄기는 초여름의 하늘빛을 닮았다. 깊어질수록 진해지는 빛은 시원한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닮았다. 찰랑이는 물결에 반짝이는 빛은 베르사유의 샹들리에를 닮았다. 몇백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다리의 이끼는 시멘트보다도 단단하고 양탄자보다도 부드러워 보였다.

15.01.11, 루체른, 샤펠교

느긋한 기타의 선율과 나긋한 화음에 파묻혀 의식이 마음대로 떠다니게 내버려 둔다. 지붕 위에 앉은 몇 마리의 새들도, 그 아래를 떠다니는 몇 마리의 백조와 오리들도, 거추장스러운 외투를 벗고 간만의 광합성을 즐기는 나도.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째깍하고 돌아가는 듯한 시간. 찰랑하고 흘러가는 듯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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