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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Sep 13. 2016

빛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수면은 반짝거렸다

#30. 루체른, 리기산에 오르다

두터운 회색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빼꼼히 보인다. 루체른 호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은 그리 많지 않은 관광객을 싣고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지체 없이 떠난다. 부두의 풍경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지만, 저 먼 곳의 봉우리는 느릿하게 내 주변을 배회한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객실로 들어가고 싶진 않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수면은 어두워지고, 더 깊어졌다.

15.01.12, 루체른, 유람선

두터운 등산복을 입은 일본인 관광객들은 셀카 삼매경. 혼자 온 한국인 관광객은 뱃멀미가 있는지 표정이 좋지 않다. 배의 끝에 매달린 스위스 국기는 끊임없이 펄럭거린다. 빛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수면은 반짝거렸고 날카로운 봉우리의 끝은 선명했다.

15.01.12, 루체른, 유람선

톱니로 맞물리어 덜컹거리는 열차를 타고 하얀 눈이 덮인 리기 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더운 계절엔 파릇한 잔디가 가득하다는데, 뽀드득거리는 눈도 좋다. 몸을 가누기 힘든 바람이 불었지만, 바람이 몰려가는 벼랑 끝 풍경도 좋다. 조금 걸어 도착한 리기 슈타펠 역 자판기의 핫초코도 좋다. 넓은 창을 가득 채우고도 남은 봉우리들 앞에서 무슨 불평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

15.01.12, 리기-슈타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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