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피렌체. 두오모
피렌체. 메디치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도시. 르네상스의 총본산. 수많은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중 하나를 나눠 읽은 그 시절의 우리는 아오이와 쥰세이가 되어 먼 미래의 약속을 했었지. 어딘가에 적어놓은 그 약속은 까맣게 잊었지만, 단 하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두오모.
피렌체에 머무는 3일 동안, 까맣게 잊은 약속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두오모 주변을 맴돌았다. 과연 시선을 잡아끄는 모습이었다. 주황색의 거대한 쿠폴라는 파란 하늘에 선명하고도 날카로운 곡선을 그려 넣었다. 골목을 지나다가도 녹색과 분홍이 어지러이 섞인 그 일부분에 발길이 묶이기 일쑤였다. 단정하고 기하학적인 그 무늬에 홀려있는 동안 젤라또는 조금씩 녹아 손가락으로 흘러내렸다.
종탑에 오르고, 그 입구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작은 예배당을 둘러보고, 고개를 한껏 젖혀 천장화를 바라봤다. 난간 끝 장식을 어루만지고, 수많은 발길에 닳아 희미해진 글씨를 바라보고, 좁은 창문으로 쏟아지는 태양을 들이마시고, 쿠폴라에 오르고, 길어지는 그림자를 바라봤다.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붉은 지붕 위 여기저기서 울렸다.
해가 진 뒤 강 건너 언덕을 올랐다. 저 멀리 짙어지는 어둠에 잠겨,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도시의 실루엣 위로 두오모는 선명하게 떠오른다. 노트를 꺼내 부지런히 사각거리며 더 이상 우리가 될 수 없는 너와 나에 대해서 생각했다. 검은 색연필을 눕혀 공백을 지워 나가며 너와 내가 어딘가에 적었던 약속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이곳을 떠나도 되겠지. 시간이 늦어 완전히 검은 하늘엔 두오모만 선명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