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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Aug 30. 2017

선명하게 떠오르다

#37. 피렌체. 두오모

피렌체. 메디치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도시. 르네상스의 총본산. 수많은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중 하나를 나눠 읽은 그 시절의 우리는 아오이와 쥰세이가 되어 먼 미래의 약속을 했었지. 어딘가에 적어놓은 그 약속은 까맣게 잊었지만, 단 하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두오모.

15.01.18,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

피렌체에 머무는 3일 동안, 까맣게 잊은 약속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두오모 주변을 맴돌았다. 과연 시선을 잡아끄는 모습이었다. 주황색의 거대한 쿠폴라는 파란 하늘에 선명하고도 날카로운 곡선을 그려 넣었다. 골목을 지나다가도 녹색과 분홍이 어지러이 섞인 그 일부분에 발길이 묶이기 일쑤였다. 단정하고 기하학적인 그 무늬에 홀려있는 동안 젤라또는 조금씩 녹아 손가락으로 흘러내렸다.

15.01.19, 두오모, 조토의 종탑

종탑에 오르고, 그 입구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작은 예배당을 둘러보고, 고개를 한껏 젖혀 천장화를 바라봤다. 난간 끝 장식을 어루만지고, 수많은 발길에 닳아 희미해진 글씨를 바라보고, 좁은 창문으로 쏟아지는 태양을 들이마시고, 쿠폴라에 오르고, 길어지는 그림자를 바라봤다.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붉은 지붕 위 여기저기서 울렸다.

15.01.19, 피렌체, 두오모

해가 진 뒤 강 건너 언덕을 올랐다. 저 멀리 짙어지는 어둠에 잠겨,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도시의 실루엣 위로 두오모는 선명하게 떠오른다. 노트를 꺼내 부지런히 사각거리며 더 이상 우리가 될 수 없는 너와 나에 대해서 생각했다. 검은 색연필을 눕혀 공백을 지워 나가며 너와 내가 어딘가에 적었던 약속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이곳을 떠나도 되겠지. 시간이 늦어 완전히 검은 하늘엔 두오모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15.01.19, 미켈란젤로 언덕, 두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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