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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Nov 24. 2017

어쩔 수 없이 또 웃었다

#02. 너의 서프라이즈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그나마 오랜 시간 함께 있을 수 있는 토요일을 통째로 날려버려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집에 들어간다고 알리는 전화에 퉁명스러운 너의 대답이 마음 한구석을 콕콕 찔렀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 네가 좋아하는 찰떡 아이스를 샀다. 늦은 밤 회식을 마치고 술 냄새와 함께 귀가하는 아버지의 손에 항상 무엇인가 들려있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을까.

도어락을 열고 굽신거리는 포즈로 집으로 들어갔다. 늦었으니 팔짱을 끼고 왜 이제 오냐며 호통을 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원고를 작성하던 거실의 탁자도, 부엉이 모양의 쿠션을 껴안고 뒹굴거리던 안방의 침대도 비어있었다. 의아했다. 뭐야 어딜 가버린 거야.

외투를 벗고 투덜거리며 옷방으로 향했다. 옷장 앞에 모로 누워 몸을 웅크린 너의 형체를 발견했다. 불 꺼진 방에 움직이지도 않는 모습이 기괴했다. 공포 영화가 꼭 이런 식으로 시작하던데. 너의 이름을 부르자 신음하듯 대답이 들려온다. 가슴이 철렁한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흐느끼듯 아프다고 신음한다. 어찌할 줄을 몰라 너의 이름만 다급하게 부르는데 뭔가가 이상하다.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내는데, 얼굴은 웃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늦는다고 심통이 났고, 내가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숨어있다가 깜짝 놀라게 해줄 모양이었다. 겨울옷이 가득한 작은 옷장에 몸을 낑겨넣고 숨어있는데 숨이 턱턱 막히더란다. 옷 사이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숨을 쉬자니 목이 아파서 아예 상체를 빼서 바닥에 드러누웠는데, 그때 마침 내가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던 거다.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오른팔로 바닥을 짚었는데 우드득. 근육이 놀랐는지, 인대가 늘어났는지, 어깨가 빠졌는지 아프기는 더럽게 아픈데 상황이 너무 어이없고 웃겨서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 웃음 섞인 울음으로 끅끅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침대에 옮겨놓고 급한 대로 얼음팩으로 냉찜질을 하며 사정을 듣다 보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원했던 그림은 전혀 아니었지만, 잠시나마 가슴이 철렁했으니 ‘서프라이즈’라는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어깨를 다쳤다니까 걱정은 되는데 표정관리가 되지 않아, 뇌물로 사 온 찰떡 아이스를 입에 물려줬다. 도끼눈을 하고 오물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수 없이 또 웃었다. 이런 사람과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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