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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율 Oct 30. 2022

6화_너그러운 감상자가 되기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얼마 전 유튜브에서 k팝 걸그룹 다큐를 봤다.
그 다큐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정교한 시스템도, 거대한 자본 투입도 아니었다.

멤버 개개인이 본인의 연습량과 노력 자체에 대해 자책하고, 회사의 직원들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는 장면이었다. 어쩐지 마음을 건드렸다.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금새 잊었다. 끝부분쯤 공개된 그 아이돌의 데뷔 퍼포먼스는 너무 완벽하고 멋졌기 때문에.

다음날은 플룻 레슨날이었다. 나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연습을 한 번이라도 하지 않고 그대로 레슨에 갔다가는, 제대로 키조차 누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아침에 동네 음악 연습실에 갔다(벼락치기는 팔자인 것).  옆 방에서는 국악기 레슨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단소인것 같았는데, 단소보다 더 많이 들려온 소리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하는 폭언이었다. 학생의 연습량과 곡 해석에 대해서 ‘뇌’ 의 유무를 물으며, 끊임없이 폭언을 하고 있었다. 아, 나도 저런 어른을 만난 적이 있다. 아주 많이 만났었다. 잊고 있던 십 대의 기억이 우물을 뚫은 것처럼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왔다.

나는 어릴 때 공부를 꽤나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고, 특목고를 준비하는 학원에 다녔다. 그 학원의 시스템은 현대의 대기업 시스템을 빼다 박아있었다. 목표를 세팅하고, 성과를 측정하고, 성과에 미치지 못하면, 어른들의 비수같은 피드백을 들어야했다. 그 말들은 말그대로 '비수' 같은 것이어서, 애가 듣기에는 가혹한 것이었다.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아주아주 열심히 했다. 그런 말을 듣도록 나를 방치한 내 자신을 미워하기에 이르렀다.

특목고에 가서는 어땠을까, 그 곳은 더한 곳이었다. 한 선생님은 우리를 기계라고 불렀다. 공부하는 기계라고, 기계는 슬퍼해서도 좌절해서도 안 된다고, 그저 할 일을 하라고.

예술의 세계는 어떨까, 앞서 악기 연습실 옆방만 봐도 짐작이 된다. 예술에 대한 평가는 때로 매우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더 복잡한 부분이 있다. 나는 가끔 클래식이 K pop과 매우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느낀다. 본래 예술은 인간의 불완전함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비정형성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가진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예술인 것.


그러나 케이팝과 클래식은 어떤 이상향에 완벽함에 다가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혹은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인 것들을 억제하며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야 완전함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매일매일 지옥처럼 지루한 과정을 반복한 후에야 비로소 자유로운 음악을 할 수 있고, 자유로운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평가자들은 더욱더 불완전한 존재들이라게 문제다. 주관적인 평가를 하고, 어떤 예술에서 감동을 받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틀리거나 모가 난 부분은 또 지나치게 잘 알아본다. 그리고 때론 행위자에게 지독하게 가혹한 평가를 내린다. 그건 때론 폭력의 모습이기도 하다.

폭력과 폭언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재능을 잃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인간성을 제거하고 부자연스러움을 얻은 예술이 세상의 에너지 총합에 기여했을까 생각한다. 한 인간이 상처받았다면, 한 인간이 몸과 마음의 어떤 부분을 영영 잃어버렸다면 그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우리는 빛나는 재능을 지속하는 마음을 응원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조금은 더 너그러운 평가자의 위치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것들을 즐길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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