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율 Feb 17. 2022

3화_플룻학원에서 처음 배운 것

저마다의 고유하게 다른 것들이 모여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

늦여름의 어느날, 플룻 학원에 처음가게 되었다.

아 내 나이 3n살에 초딩과 함께 동네 학원이라니...이 무슨....이런 생각을 하며 쭈뼛쭈뼛대며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날 처음으로 학원으로 미리 주문해둔 내 악기를 받았다.


첫 날 배운것은 단 세가지였다. 악기 조립방법과 부는 자세, 그리고 조율.


조율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조립방법을 배우면서 헤드 위치를 완전히 끼우지 말고 조금 남겨두고 끼워야 442hz 에 맞는 정확한 음정이 난다고 배운 것.

헤드를 완전히 끼워서 악기가 짧아지면 소리는 높아지고, 악기가 길어지면 소리는 낮아진다.

그래서 플룻보다 훨씬 작은 악기인 피콜로는 아주 높은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첼로/바이올린/ 비올라를 생각하면 쉽다고 하셨다.

악기는 몸집이 커질수록 낮은 소리를 내고, 몸집이 작아질 수록 높은 소리를 낸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아주 높고 청명한 새소리 같은 것,

동굴보다 낮은 저음을 가졌던 어느 큰 사람.


그리고, 크기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 ‘좋고 나쁨이 없고 그저 저마다의 특징과 기능이 있다는 것’ 을 생각했다.


그 날 이후로 오케스트라가 다르게 보였다.

예전에는 바이올린이나 플룻, 혹은 협연자의 피아노만 집중해서 봤었는데, 크기도/음역대도 제각각인 다른 악기들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저런 덩치도 목소리도 다른 악기가 모여서 저토록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다니. 

더하여, 연주자의 실수에는 덜 예민해지고, 연주에는 더 잘 감탄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케스트라는 정말로 한 세계나 다름 없었다.


말러는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 ‘교향곡은 하나의 세상이어야 한다. ‘

말러 교향곡 만큼이나 이해하려면 한 세월이 걸리는 문장이기는 하지만, 그 세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멋대로 문장을 거꾸로 바꿔 본다. ‘세상은 하나의 교향곡이다.’ 라고.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들은 제각기 다 다르게 생겼고, 목소리도 제각기 이지만, 그들이 모여 내는 불협화음도, 선율도 전부 다 음악이라는 것.

모두가 고유하지만 이 교향곡에서는 그 고유함이 모두 필요하다. 이 문장안에서는 세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몫의 악기를 오랜만에 가지게 된 날, 전혀 모르던 책의 첫 장을 읽는 것처럼 신이 났다.


이런 종류의 예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정에서 몰랐던 것을 배우게 되고, 그것이 화각을 넓혀줄 것이다. 그리하여 운이 좋다면 조금 더 고유한 사람이 되거나 다른 사람들의 고유함을 보다 잘 알아볼 수 있게 될 . 

내 삶의 몇 가지 좋은 것들은 모두 이런식으로 시작했다.


오랜만에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풍선껌처럼 달고 크게 부풀었다. 

나는 악기를 배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2화_마침내 찾아낸 나의 악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