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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율 Feb 25. 2022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

아파야 산다(샤론 모알렘 저)를 읽고, 망한 생에 대한 관대함

가끔 나의 후짐과 결함에 새삼스럽게 놀라곤 한다. (그럴 때 있지 않아요? 내가 나의 후짐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때...? ) 그렇게 많은 책을 허겁지겁 읽고, 여러 노력을 하며 긴 시간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내 것이 된 것들의 부피와 밀도가 겨우 이 정도여서,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행동이 실수투성이에 오류 범벅이라서.


평생을 연마해서 무기 또는 경력, 장점이라 믿었던 것들이 되려 사람을 주저앉히는 때도 온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 좁아진 시야로 같은 식의 의사결정을 하고 내 인생을 좁은 구석으로 몰아넣은 일, 심지어 좁아터진 발언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 준 것.


우리가 타인을 볼 때도 비슷한 일 (아니, 더 엄격하게)이 일어난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사람도 예상 밖의 행동으로 우리를 실망시킨다. 제 멋대로 감탄했다가 제 멋대로 실망하는 일의 반복이다.


대체 인간들은 왜 그러는 걸까? 대체 왜.....


현재에 대한 불만족은 쉽게 과거로 향해서, 그런 생각들은 후회로 번지기가 쉽다.

그러니까 사람의 일들, 사람이 하는 작은 후회들. 좀 더 일찍 운동을 했더라면, 그때 다른 것에 시간을 쓰지 않고 외국어 공부를 했더라면, 그때 그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공부를 했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또한 사람의 선택들, 나를 살리려고 갔던 길들, 가령 빨리 돈을 벌어 안정적으로 살려고 했던 것, 사랑받고 싶어서 비굴하게 군 것, 자기 계발에 골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서관의 책들 사이로 숨어든 것이 오늘날의 내 모든 결함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실제로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인데 정말로 그것이 신체의 병으로 남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의 결과로 병든다. 잘 먹고 평온을 유지하며 잘 살려고 나를 일에 몰아넣었건만, 음식을 소화하지 못하고, 잠에 들지 못하고, 쉽게 화에 휩싸이게 된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은 평생을 축적해온 것들의 결과가 오늘날 내가 당장 맞닥들인 세계와 불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삶의 결과로 병이 남았고, 어떤 역할을 해내기에 부족한 내가 되었고, 건건이 오류를 일으키는 오늘이 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무서운 말인 것 같기도 한데 명백한 사실인것만 같아서, 그런 말을 쉽게 내뱉는다. 그 언어는 내 20대의 습관적 주문이자 놀이였다.


그 20대의 나는 생명과학대학의 학생이었다. 그곳에서는 자연의 완벽함과 정교함에 대해 배운다. 그런데 또 자연계의 결함에 대해 배운다. 그것이 생물학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모든 것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세포와 장기, 시스템의 징그러운 디테일과 완벽함, 그런데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치명적인 오류들, 유전병과 전염병, 도태와 선택. 미생물의 크고 작은 승리와 실패, 인간의 맞대응. 생명체는 놀랍도록 고군분투하며 살지만 언제나 조금씩은 지고, 누군가에게 잡아먹힌다.

그런 전쟁 같은 일들은 교과서 속에서는 놀랍도록 건조한 문체로 남아서, 나 또한 건조한 마음으로 계속 계속 외웠다. 졸린 눈으로, 피곤한 정신으로,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세포 소기관과 질병과 미생물의 이름과 여러 기전들.

그러다가 도서관의 구석에서 이 책을 읽었다.




샤론모알렌의 ‘아파야 산다’는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는 인간의 결함과 오류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적자생존은 모두가 안다.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 진화는 언제나 살아남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여전히 ‘이런 형질’ 이 살아남아 이렇게 많은 질병을 가지고, 심지어 다음 세대에게로 전달하면서 살아가는가. 왜 나는 이 세계에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것 일까. 이 책은 이런 인간의 의아함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여러 가지 질환의 예를 들어 그 병이 남은 이유에 대해서 추론하고 퍼즐을 맞춰 나간다. 치명적인 병과 결함들은 왜 우리를 죽이지 않고 이어졌을까? 당뇨병, 바이러스 질병, 콜레스테롤 질환, 혈색증/낫 모양 적혈구의 형질은 왜 아직도 버젓이 이어져 현 인류에게 이토록 큰 고통을 주는가?


우선 과거의 인류가 처해있었던 환경적 위협에 대해 설명한다. 한 예로 책에 소개된 피부색에 관한 문제가 있다. 적도지방의 사람들은 피부색이 검다. 적도의 햇빛에 적응한 결과이다. 엽산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엽산은 체내 세포가 분열할 때 dna 복제를 돕기 때문에 세포 성장 체계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78페이지) 그래서 임산부들이 엽산을 챙겨 먹는다. 그런데 자외선은 생명 현상에 필수적인 엽산을 파괴시킨다. 그리고 강력한 에너지로 여러 생명활동에 지장을 준다. 검은 피부는 햇볕에 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엽산 손실을 막기 위해 적응된 형태이다. 피부색이 검을수록 흡수되는 자외선의 양이 줄기 때문이다. (79페이지) 검은 피부로 인해 가장 큰 위협인 자외선의 적응에는 성공했지만 대신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비타민 d 또한 생명체 필수적인 영양소인데, 체내 흡수되는 햇빛의 양이 적어지면 비타민d도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진화는 그것도 다 고려한 채 진행되었다.


 APOE4라는 특정 유전자의 공간을 검은 피부 개체군에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83페이지) 이 유전자는 혈액에 흐르는 콜레스테롤 양을 늘리는데, 그 결과로 비타민 d로 변환될 수 있는 콜레스테롤의 양이 많아진다. 이에 피부에 스며든 적은 햇빛을 최대치의 효율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말입니다....여분의 콜레스테롤은 오늘날의 인류에게 심장병과 뇌졸중 발병의 확률을 높인다. 현 인류가 먹는 음식에는 콜레스테롤이 너무나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 시절 개체를 살렸던 선택이 다른 시절에는 개체의 결함이 된다.


이와는 정 반대의 일과 문제가 백인에게서 나타난다. 또한 아시안인에게는 다른 유전적 문제가 있다. 우리 모두 양상은 전혀 다르지만 공통점을 공유한다. 과거의 적응이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부적응을 초래하는 일. 


p.70~71(본 책)

진화란 경이로운 과정이지만 완벽하지는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응이란 대개 일종의 타협이다.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공작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꼬리 덕분에 암컷에게 매력을 발산하지만 이 때문에 더 쉽게 천적의 눈에 띈다. 인간은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큰 뇌를 담을 수 있는 두개골이 있지만, 이러한 골격구조로 인해 태아의 머리가 엄마의 산도를 빠져나오기 힘들다. 자연선택은 특정 식물이나 동물을 ‘개선’ 하는 적응을 선호해나가는 게 아니라, 현재 환경에서 어떡하든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 한다.


살아남으려고 했던 협상과 선택에는 대가가 교환된다. 책에서는 다른 사례도 풍부하게 소개된다. 철분을 내주었지만 말라리아에 강한 형질이 된 것, 페스트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 혈색증으로 고통받는 일. 자연의 일들.


생물학 책의 활자는 건조하게 인쇄되어 그 자리에 박혀있는 것 같지만, 생명체들의 고군분투와 응전은 너무도 치열하고 애처로운 교환과 협상의 역사여서 졸린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명료해진 정신으로 그 분투가 내 인생에도 있었음을 겨우 생각해냈다.

우주 전체에서 보면 내가 했던 한 시절의 선택들은 너무나 작고 작은 것일 테지만, 자연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축소되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오며 한 선택들의 정확한 맥락은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그렇게 살아남아 결과가 되어버린 현재의 내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결함이라고, 그래서 망해버린 것이라고 말했지만, 일단은 내일을 만들어내고 내일모레를 생각해내는 것만이 문제였을 것이다. 적어도 내 몸은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가진 치명적인 결함과 오류가 자연이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나아졌다. 어찌 보면 혹독했을 지구에서, 더 잘 살아남는 방향으로, 더 오래 사는 쪽으로, 지금 이 위기를 벗어나는 쪽으로,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남겨진 결과가 오늘날의 인간인 것.

최선이 최고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화의 결과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그리하여 현 인류도 필연적으로 병들고, 자주 나쁜 선택을 한다.

인간은 당뇨병에 걸리고, 희한한 모양의 적혈구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한다. 때론 치명적이고 심각한  고통을 초래한다. 그것은 오늘날의 한 인간 개체의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의 일인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살다 보니, 살아남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런 체념과 인정을 마음에 담아 둔다. 이 결함과 오류로 가득한 몸을 이끌고 미래로 가야지. 인간은 그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이 책은 재미있다.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을 인류가 살아오는 동안 환경은 늘 생명체에게 가혹했고, 그런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쪽으로 진화의 압력은 가속되고, 그렇게 살아남은 생명체는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또 다른 환경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이 모든 게 숨 막히는 숨바꼭질처럼 느껴지고, 이보다 더한 서스펜스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나는 내가 가진 결함에, 망함에 조금은 더 관대해진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내겐 잊을 수 없는 20대의 책이 되었고...


망함을 껴안고 미래로 나아가는 건 생명체의 숙명일 것이다. 관대함을 타인과 세계에도 적용하는 일은 남은 생의 숙제일 것이다.



<참고 : 아파야 산다/ 샤론 모알렘, 김영사, 인용 내용은 ( )  페이지로 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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