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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Jun 20. 2020

내가 생각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

어떻게 떨어져서 교육할 것인가

* 다음 글은 박인연님의 저서 '트렌드 에듀케이션'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1. 여는 글

코로나 19 전염병 창궐은 우리의 생활 방식을 여러 방면에서 바꾸었다. 공교육에 있어서는 초반에 집단 감염 발생을 막고자 개학 연기라는 미증유의 조치가 취해졌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의 투트랙(two-track) 전략이 임시방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글은 현재 대규모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로서 그간의 교직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중등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나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2. 담임교사의 역할 축소

특정 학년의 학생들을 일정한 규모로 나누고 관리하는 담임교사는 물리적으로 학생들을 묶어놓기 어려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그 기능이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학교 상부의 지시사항을 학생 개인에게 직접 하달 가능한 온라인 방식은 중간 매개체로서의 담임교사 기능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으며, 주로 담임교사 전담 하에 이루어져 왔던 노작교육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그 빈도와 강도를 낮추고 있다. 담임교사인 나는 올해 상부로부터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항을 수시로 하달받고 이를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지만, 예년에 비해 담임으로서의 인간적 유대감과 장악력은 강하지 않은 반면 텍스트를 처리하는 봇(bot)으로서의 사무가 비약적으로 증대하여 쉽게 업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시국의 장기화에 따른 담임교사의 효용성이 낮아지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특유의 교육열이 쌓아 올린 담임교사의 무거운 짐이 앞으로 조금씩 덜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3. 학교생활기록부(평가)의 패러다임 변

코로나 19 사태가 발발하기 전, 학교생활기록부의 법적 근거를 담당하는 훈령 제321호의 2020학년도 주요 개정사항은 '교사가 직접 관찰 평가한 내용을 근거로 자료를 입력'하는 것이 기본 골자였다. 교사가 직접 관찰할 수 없는 교실 밖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활동은 학부모나 사교육의 개입이 있을 수 있는 검증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근본적 조치인 셈이다. 하지만 우연찮게 터진 코로나 19 전염병은 야심 차게 발표한 이 개정사항을 정면으로 무력화시켰다. 온라인 수업 초창기에 주목을 받은 화상수업 시스템이 학생을 관찰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교사의 제한된 비전은 자그마한 웹캠이 비추는 영역 바깥의 '꼼수'까지 읽어낼 수는 없다. 때문에 현재 학교생활기록부에서는 온라인 수업에서 실시한 대부분의 교육활동에 대해 정량적인 부분을 제외한 정성적인 부분을 기재할 수 없게 돼있으며, 음악이나 체육과 같이 신체적 기능을 활용하는 교과에서 학생의 수행 장면을 담은 영상 정도만이 제한적으로 활용 가능한 상황이다.


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온라인 수업 상황을 평어로 담아내기 어려운 현재의 학교생활기록부가 한계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형태의 매개가 되었든 공정성과 보안의 문제가 현실의 발목을 잡겠지만, 지금의 학교생활기록부 체제에서는 결국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학생을 학교로 불러내어 평가하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작금의 상황에서는 학교 방역이 교육평가의 패러다임을 움직이는 것보다 현실성 높은 일이기에 온라인 수업과 생활 방역 속 등교 수업을 엉거주춤 병행하고 있으나, 지금의 방식은 일선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 집단의 체력을 빠르게 소진시킨다는 것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국 어느 시점에서 교육은 평가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다.


4. 공동체 핵심역량의 정교화

수업의 온라인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학교는 전통적 사회화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그 사회화라는 것이 순기능만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우리는 학교가 기존의 사회가 이루어 놓은 규범과 문화체계를 학생이 습득하게 도움으로써 학생이 사회에 편입할 수 있게 한다는 관점 또한 배제하지 않는다.) 학교의 기능 축소가 일견 아쉬워 보일 수는 있겠으나,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기능 소실이 아닌 현 사회가 사회화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함에 따라 학교가 학생들에게 길러줘야 할 핵심역량이 정교화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로 요약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인류 공동체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디지털 방식으로 성숙하게 소통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기존 학교 현장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이는 주로 윤리나 정보교과 영역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기본 매개체의 관점으로 논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간 비즈니스 영역에 주로 포진해 있던 온라인 협업 기술을 필수 소양으로 가르침으로써 전통적 사회화 요소 중 하나인 협동심을 발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즉, 기존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역량 중 하나였던 공동체 핵심역량은 디지털 리터러시와 온라인 협업이라는 기술이 보다 부각되는 형태로 정교화될 것이다.


5. 닫는 글

현 코로나 시대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 분명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이던가. 6·25 전쟁통 속에서도 임시 학교를 세워가며 교육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던 민족이 아니던가. 지금의 난관이 일상화된 삶을 전제로 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더라도 우리는 배움에 대한 열의와 교육의 질적 발전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공교육의 답답함에 불만을 토로하는 나이지만, 현 상황 개선에 이바지할 줄 아는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고자 주어진 소임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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