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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Sep 12. 2020

기억은 때론 지겨운 것

인연은 가르칠 수 없지만

<YA>는 인간관계의 허무함을 취중담이라는 형태를 빌어 풀어낸다.


1. 어쩌다 이런 혼종이 탄생한 걸까

이 글은 힙합 아티스트 '키비(Kebee)'의 2016년작 <YA>라는 곡에 대한 단상에서 비롯되었다. 몇 년 동안 이 곡에 대한 평론을 써야겠다는 욕구가 해마다 몇 번씩 번득이는 영감으로 나를 엄습했지만, 나는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건 내가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이어서도 아니고, 전적으로 게을러서도 아니었다. 그저 이 노래가 담고 있는 아름다움을 간결하게 풀어내기에는 내 글솜씨가 너무나 부족했던 탓이다. 술에 대한 주제를 담은 다른 몇 곡과 엮어 쓰는 기획으로 접근해볼까도 싶었지만, 나는 이 곡을 다른 곡들과 함께 큐레이팅 하는 형태로 소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 또한 우선순위에서 미뤄두고 있었다.


한편, 나는 교사로서 학생과의 인간관계의 허무함에 줄곧 허덕이는 유별난 사람이다. 그 허무함에서 오는 고독함이 사무치게 나를 조여올 때마다 이를 글로 옮겨보고픈 욕구가 고개를 들지만,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쓰기 어려운 낯 뜨거운 내용이었다. 간신히 썼다 해도 그날 밤 잠결에 이불킥하다 다음날 아침에 허겁지겁 비공개로 돌려버릴 게 뻔해 보이는, 쓰고 싶지만 쓸 수 없었던 금단의 소재였다.


오늘, 어떻게 하면 <YA>의 숙원을 완성할 수 있을까 싶어 오랜만에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곱씹어 보다가 문득 하나의 묘안이 떠올랐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자립할 수 없었던 두 소재를 하나의 글에 서로 기대게 해 보는 건 어떨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니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리뷰도 수필도 아닌 어중간한 글이 되겠지만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심상을 일거양득에 털어놓을 수 있는 후련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2.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위로해줘

한국 힙합 리스너에게 키비는 '소년'이라는 이름표가 줄곧 따라다닌다. 2003년 <People & Places>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소년을 위로해줘>라는 곡으로 본격적으로 음악 신에 데뷔한 그에게 소년은 그의 음악적 감수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이자 그가 넘어서야 할 관문과도 같았다. 어떤 이들은 탄탄한 랩 스킬을 바탕으로 공감의 순간을 포착하는 그의 유려한 리릭시즘에 찬사를 보냈고, 어떤 이들은 그의 음악을 힙합의 주류 문법에서 비껴 난 것이라고 폄훼하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한편 그는 아티스트이기도 했지만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 힙합 언더그라운드 신의 한 축을 이끌었던 <소울컴퍼니(Soul Company)>와 <스탠다트(Standart)>의 수장으로서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고, 그 과정에서 동료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몇 차례의 변곡점을 지나 지금은 한 사람의 자연 예술가로 돌아온 그이지만, 그의 솔로 음악은 커리어의 시기와는 무관하게 인간의 본질을 고민하고 순수를 갈망하는 고뇌와 성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탓에 그가 내놓는 작업물마다 소년이라는 키워드에 필터링되고 검열당하는 것은 다소 애석한 일이지만, 이는 그만큼 그의 음악이 쌓아온 고결함이 하나의 견고한 상아탑을 이루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YA>는 <소년을 위로해줘>의 화자인 소년이 성장해 어느덧 어엿한 30대 성인이 되었지만, 삶에 대한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주말이면 침대에 쓰러져 있기 일쑤인 화자는 인간관계에 대한 갈망으로 옛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만나 회포를 푼다. 한 다리 건너 근근이 소식을 듣는 통에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소식'을 더 많이 아는 친구들과는 그만큼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입장의 차이가 존재하고, 그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세월에 일부는 희미해지고 수차례 안줏감으로 소비하여 너절해진 추억들 뿐이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와는 무관한 여자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길어지고 느슨해진 술자리의 분위기에 친구들은 모임을 끝내려고 하지만, 화자는 막무가내로 한 차례 장소를 옮겨 술자리를 이어갈 것을 고집하며 주정을 부린다.


야 뜬금없이 너도 이런 생각해본 적 있냐

야 늙어 죽을 땐 친구가 몇 명일지

야 늙어 죽을 땐 친구가 몇 명일지 야


누군가는 잊어버리고 무언가는 사라질 텐데

어디 영원한 것을 말할 수 있나

기억은 때론 지겨운 것

우린 그냥 여기 천국에 있어

천국에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젊은 세대에게는 과거 학교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와는 또 다른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펼쳐진다. 누군가는 직장에서의 피상적인 대인관계에 염증을 느껴 학창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 치유를 시도하려 하지만, 정체되어 버린 과거를 재탕할 뿐인 관계는 실질적인 발전 없이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간다. 거기에서 더 운이 나쁜 누군가는 미묘하게 달라진 서로의 입장 차이에 상처 받아 절연하기도 한다. 관계라는 건 꾸준히 공통사를 나누며 활력을 불어넣어야 존속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관계는 결국 누군가에게 잊히고 사라져 갈 서글픈 존재임을 이 노래는 우리에게 선명히 각인시킨다. 늙어 죽을 땐 나에게는 몇 명의 친구가 남아있을까. 혹은 나는 누군가에게 늙어 죽을 때까지 친구로 남아줄 수 있을까. 우리는 소년에서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위로가 필요한 존재다.


3. 기억은 때론 지겨운 것

교사는 직업 특성상 매해 수많은 학생들을 만난다. 일반적인 직장동료라면 열과 성을 다해 그들을 진심으로 대할 필요는 없겠지만, 교사는 다수를 대상으로 그렇게 해야 함을 강요받는 특수한 위치에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그들을 대하고 일부와는 '정'이라는 것이 들어버리면, 어느덧 새 학년이 되어 기존의 관계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관계로 리셋당한다. 정이라는 감정을 대량 생산으로 규격화하여 찍어낼 수 있고 후유증 없이 즉각 소멸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교사는 그저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해져야 한다.


내게 교사는 전통적으로 제자를 담당할 때는 사랑을 주지만, 제자가 교사 곁을 떠나고 난 뒤에는 스승의 날을 통해 제자로부터 오롯이 감사를 받기만 하고 먼저 사랑을 주어서는 안 되는 수동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해가 지나도 여전히 옛 제자에게 적극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주는 교사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관념이 잡힌 것은 내 주변의 교사들은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별도의 튼튼한 감정적 지지기반(=가정)을 꾸리고 있었거니와 그 정도가 지나쳐 비윤리적이고 꼴사나운 불륜을 저지르는 일부 교사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뉴스를 통해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인간관계 자체가 싫어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두며 살았던 나는, 그것이 역설적으로 정을 내어주기를 갈구하고 그에 따른 후유증 또한 심각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기제였음을 교사가 되고 난 뒤 깨달았다. 매년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가고픈 애틋한 아이들이 있었던 나는 교사와 제자의 관계는 정말로 일반적인 인간관계처럼 인연을 지속해 나가면 안 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나도 다른 교사들처럼 다른 감정적 지지기반을 가지면 자연스레 해소되는 것일까 싶어 한동안 소개팅을 다니기도 했지만, 천성적으로 집돌이에 비혼주의자인 내가 억지로 감정을 꾸며낸다 한들 진심으로 배우자를 찾는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뿐이라는 걸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결국 나는 조심스레 몇몇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연락을 건네는 '이상한' 교사가 되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인연을 이어나가고픈 욕심이었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를 묻고 영어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도 된다고 했다. 생일이 되면 먼저 축하한다고 말을 건넸고,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설레발을 치며 보러 올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대인관계가 서툴렀던 나는 나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뉴스에 나오는 부류의 인간과 한통속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해야만 했다.


불행일까 다행이었을까, 대부분 그러한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아이들이 대부분 차분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주변에 나 같은 이상한 선생님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아이들은 관계 유지에 있어 나만큼의 절실함이 없었다. 결국 나 스스로 무너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그나마 덜 이상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 서로의 거리를 인정하고 침묵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프로페셔널한 교사가 되기 위해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정이라는 감정을 대량 생산으로 규격화하여 찍어낼 수 있고 후유증 없이 즉각 소멸시킬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뿐이다. 경력을 쌓아 장학사로 전직하려는 꿈을 갖고 있는 것도, 우습지만 가르칠 수 없는 인연을 자꾸만 가르치려 하는 나라는 인간의 부덕함 때문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게 된 관계들에 대해 떠올리면 미련이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괜찮다. 굳이 끄집어내지 않으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우리가 더는 공통사를 나눌 수 없는 관계인 이상 내게도 너희에게도 기억은 때론 지겨운 법이다. 다만 우리, 결과론적으로 사라져 갈 엔딩 때문에 전적으로 허무주의에 빠지지는 말자. 인생의 끝인 죽음 앞에서 완전히 끝인 것은 없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우연히 만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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