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직장을 옮겼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하고픈 말들이 하나 둘 쌓여 갔지만, 나의 마음은 도저히 글을 쓸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브런치에서는 정제된 글을 써야 한다는 나와의 약속은 이전의 나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했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갈수록 고민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와중에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일 수 없었던 나의 처지는 절필을 고민할 정도로 막다른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부족한 글솜씨만 말썽이었던가. 현실의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불안정한 심리 탓에 교직관을 하나로 고정할 수 없었다. 어느 날에는 아이들이 한없이 사랑스러웠다가도, 하루가 지나고 나면 아이들이 그렇게 증오스러울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러니 하나의 글감을 정해 놓아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버리면 해당 글감의 주제의식을 긍정하지 못해 폐기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던 와중에 치즈의 <LOSER>를 만났다. 치사량 수준의 달달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사실 그간 나는 치즈의 음악을 무의식 중에 피해 다녔다. 하지만 우연찮게 틀어놓은 최신곡 플레이리스트에서 접하게 된 <LOSER>의 통통 튀는 댄싱 바운스는 나의 귀를 단박에 잡아끌었고, 무슨 곡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치즈의 곡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한 번, 발랄한 곡조와 대치되는 곡목에 또 한 번 놀랐다. 첫인상을 견인했던 편곡이 이 곡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특징이었다면 이 곡은 그저 괜찮은 올해의 노래 중 하나였겠지만, 이쯤 되니 가사를 확인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아성찰을 주제로 한 가사는 발랄한 분위기에 맞춰 키덜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견 단순한 메시지를 나열한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 없이 파편화된 이미지를 펼쳐놓은 것이 아닌 나름의 서사 구조를 지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1절>
I think I'm a loser / 뭔가 틀린 것 같잖아 / Hey you How do you think? / 우리 다를 거 없잖아 ... (중략) ... 근데 왜 이럴까 / 매일 똑같은 하루들 / 별 의미 없지 / You know what I mean?
금방 커버린 나 / 어른일까 설마 / 난 아직 다 몰라 / 오늘도 나 혼자 / 매번 이래 진짜 / 난 아직 날 몰라
1절의 화자는 패배자 같은 자신의 귀책사유를 스스로에게 돌린다. 자신을 완전히 규정짓지 않지만 이때의 나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나'라기보다는 '미완의 나'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2절>
Hey you How do you think? / 봐봐 틀린 건 없잖아 / What should I write? / 어느새 멋대로 쓰여진 Tree wiki / 이게 다가 아냐 ... (중략) ... 넌 아직 날 몰라
2절로 넘어오면서 화자는 타인이 불합리하게 규정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반기를 들며, 조금씩 내가 누구인지 확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Bridge>
I can be anything / I can be anything / I can be whatever I want
이윽고 화자는 자신의 미완을 잠재력으로 승화시키며 위로송으로서의 주제의식 서사를 이룩하는데... 이 시점에 다다르자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울컥하고 말았다. 화자가 보여주는 감정의 다각도가 무엇이 문제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나 자신을 미워했다가도 학생들을 미워하기도 하는 극도로 불안정한 내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릿지에 이르러 스스로의 잠재력을 긍정 선언하는 장면에서는 나 또한 과연 할 수 있을지, 당장이라도 내려놓고 전부 포기하고 싶은 내가 저렇게 생각해도 좋을지 너무 서글펐던 탓이다. 희망찬 노래를 들으면서 이렇게나 서글퍼질 수 있다는 역설.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 철옹성 같은 현실은 바꿀 수 없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나는 또다시 무너질 것이고 일희일비하고 말 터이니. 그러니까, 글이라도 좀 마음 편하게 쓸 수는 없을까. 현실에서는 패배자이지만, 글에서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게 쓰지 않아도 좋으니, 다음 글은 이번 공백보다는 앞당겨진 시일 내에 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