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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love Oct 15. 2015

#11 산토리니에 해가 지면

화가 났던 마음도 스르르 사라진다.

하얀 집들이 붉은 빛으로 물드는 시간

도형오빠한테 삐져서 말도 안하고 혼자 필름을 갈아끼우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헤어지는데 왜 자꾸 놀리는 거야 서운하게.. 서운한 마음이 커지면서 괜히 미워졌다. 떠나는 도형오빠와 용기오빠, 태수오빠가 너무 그리울 것 같아서. 괜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는데 착한 도형오빠는 정말 내가 기분이 상했을까봐 졸졸 쫒아다닌다. 


마음이 탁 트이는 이아마을의 성곽에 오른다. 그리스 국기가 시원하게 날리면서 우리를 반긴다. 벌써부터 해가 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아마을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보기 위해 성곽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전,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건지 빛이 눈부시게 강렬하다. 하얗기만 하던 이아마을의 벽들은 점점 노란빛을 띄고 사람들의 환호소리도 점점 늘어간다. wow, great, oh my god, beautiful ..등등 수십가지의 형용사가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저마다 성곽 선셋포인트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옆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아무말도 없이 그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들뜨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웃으며 신나하는 사람도 있고 대포카메라를 들고 옆에 자리를 잡은 아저씨에게 웃어보이기도 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장 아름다운 그 순간을 기대한다.


혼자 사진을 담고 있었더니 태수오빠가 이리오라고 손짓을 한다. 괜히 또 괜찮다고 사진 좀 더 찍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으휴.. 내 고집을 누가 말려 고집쟁이.


산토리니의 일몰을 담기 위해 몰려든 사진사들

모두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삼각대에 올리고 똑같은 곳을 바라보며 셔터를 누른다. 찰칵찰칵 소리가 사방에서 퍼진다.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담기 위해 저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온 사람들의 열정을 누가 말릴까. 필름카메라를 지고 온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을이 내린다.

슬며시 도형오빠 쪽으로 가서 앉았다. 멋쩍은 마음에 가만히 앞을 내려다 보고 있다가 도형오빠한테 물병을 달라고 했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만 보던 오빠는 나에게 얼른 물병을 건네준다. 미안해라.. 이렇게 착한오빠한테 나는 왜 화를 냈을까. 그냥 웃으며 넘길 것이지..


도형오빠가 준 물병을 담은 사진. 화해의 의미라는 걸 오빠는 알았을까.

필름카메라가 가지지 못하는 줌, 그리고 화질은 아쉽기만 하지만 필름만의 느낌은 따뜻한 그대로 있어주는 것에 감사해진다. 물병은 그렇게 우리에게 화해를 안겨줬고 우리는 다시 웃으며 얼굴을 쳐다 볼 수 있었다. 도형오빠를 한 대 때렸다. 놀려서 미운건 미운거니까. 미워!!! 라고 하니까 뭐가 미워~ 하며 능구렁이처럼 웃는다. 능글맞은 할배같으니라고.


행복해보이던 외국언니

내 앞에 있는 언니는 이 시간이 행복한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리저리 폰을 돌려가며 사진을 찍고 웃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웃음에 나도 괜스레 행복해진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너무 행복하다. 행복하다고 얘기 할 수 있어 감사했다. 내일은 내일이고, 내 옆에는 함께 여행한는 그들이 있고 그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며 미소지을 수 있음에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안녕 산토리니,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기억을, 추억을 나눌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해가 지면 나는 혼자가 되겠지만 그래도 이 행복함은 여전히 내 안에 남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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