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은 아닌데 맨날이라고 하면 좀 억울하긴 해.
어김없이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만 알게 된다. 소리를 지르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왜, 매번 소리를 지르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숨을 가다듬고 그 자리를 피해 보라는 여러 조언들이 있지만 그 순간에는 나역시 삐뚤어진 일곱살 어린아이가 되는 것처럼 사력을 다해 아이와 싸우고 있다. 아이를 다그치고 모진 말을 쏟아내고 있는 스스로를 볼 때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왜 멈출 수 없는걸까.
자신의 우주인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화난 눈으로 내려다 보고 있을 때 그 작고 여린 아이의 가슴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져내린다. 그래서 엄마들이 자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우는걸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듯)무척이나 힘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힘든 것만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을 힘들어하는, 내 아이를 버거워 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들다.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내가 얼마나 형편없고 못난 인간인지 마주하게 되는 것만 같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실수를 하거나 관계에 어려움이 생길 때도 곧잘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는 다시 일어설 힘이 금방 생기기도 했다. 그 상황이 지나가면 수습이 되고 함께 하는 동료도 있고 나를 일으켜 주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육아는 내가 생각하고 동경하던 엄마의 모습과 아이를 양육하며 마주하게 되는 실제적인 나 자신이 비교 당하며 싸운다. 그러면서 매일 밤 다짐한다. 내일은 더 이해하고 안아주어야지 하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기는 할까?이렇게 양육하는 것이 맞을까?이런 날들만 반복되다가 아이가 커버리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자주 두려워지기도 한다.
아이가 악을 쓰고 달려들 때 같이 넘어지지 않는 마음을 가지려면, 아이가 폭주할 때 훈육이란 이름으로 그 아이를 이겨 먹기 위해 더 악을 쓰는 나를 보지 않으려면 내가 더 단단한 엄마가 되어야 하겠지. 결국 언제나 결론은 엄마가 잘하면 된다는 사실이 가끔 서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