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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Mar 27. 2024

나 = (양쪽에 낀) 샌드위치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 + 편한 곳만 찾는 이기적인 후배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 말이었다. 인사이동이 발표 난 뒤 고작 이틀이 지났을 때, 갑작스레 화재진압대원에게도 구조구급수당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문서가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구조대원, 구급대원, 구조‧구급업무를 하는 행정직원만 받을 수 있는 수당이었다. 2013년부터 화재진압, 생활안전, 간단한 구조출동에 주로 쓰이는 5톤 펌프차에 간이 구급장비(심장충격기, 각종 부목, 소독물품, 붕대, 체온계, 혈압계 등)를 적재해 여러 사고현장에서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 즉시 간단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펌뷸런스(펌프 + 앰뷸런스)를 운영해 왔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일이 추가됐지만 그 일을 하는 화재진압대원들에게 10년 넘게 수당 지급 없이 운영되어 왔다(적 근거를 마련하고 기재부와 예산 문제도 협의해야 합니다, 일 먼저 시킨 후 돈은 나중에라도 주면 좋고 안되면 말고라는 식입니다).


그러다 이번 인사 이후부터는 펌뷸런스(화재진압을 하며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는)에 타는 화재진압대원들도 구조구급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다만 펌프차에 타는 인원(보통 4~5명이 탑니다, 휴가 등 여러 사유로 인해 근무 인원이 적은 경우엔 4명 탑승) 중 1명이라도 응급구조사 2급 자격이 있거나 2주 구급교육을 받고 구급대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1년 이상 되는 직원이 1명이라도 배정되어야 했다. 윗분들이 보기에 최소 위 2가지 중 1가지라도 있어야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런 자격조건이 만들어졌나 생각했다. 그래야 펌프차로 배정된 4~5명의 직원 모두 구조구급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사이동이 발표된  3일 만에 다시 팀별로 인원 조정이 이뤄졌다. 내가 근무하는 센터의 경우 팀별로 나(1팀)와 내 동기(2팀) 그리고 1명의 후배(3팀) 중 2명이 팀을 서로 바꿔야 했다. 팀을 바꾸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팀이 바뀌면 담당 업무가 바뀌거나 새로 바뀐 팀원, 팀장과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일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사람끼리 코드가 맞지 않으면 같이 어우러져 일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생기기도 합니다, 또 정해진 근무일이 바뀌기 때문에 아내와도 상의해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의 경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회사 일이니 최대한 협조하기로 생각했다. 당연히 월급 받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그리 따르는 게 맞다고 여겼다. 그런데 후배의 생각은 달랐다. 비번일에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도대체 뭐가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인지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이 있어 절대로 팀을 옮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통 인사이동이 있기 전에 미리 팀장이나 센터장이 전화나 면담을 통해 넌지시 인사이동에 관한 의향을 묻기 마련이었다. 나와 내 동기는 속으로 탐탁지 않았지만 회사일이니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그에 반해 후배(나보다 7년이나 늦게 들어온)는 본인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고 결국 팀을 옮기라는 윗분의 지시를 나와 내 동기가 이행해야 했다. “그래,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 팀을 옮기지 못할 수도 있지”라며 이해하려 했지만 속으로는 짜증이 났다. 단체생활하며 개인이 조금 손해 볼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는 게 힘든 일인가?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짜증만 날뿐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 일은 그렇게 두 사람이 팀을 옮기는 걸로 끝이 났다. 갑작스레 팀을 옮기는 문제로 속상했지만 서운해도 참았다. 회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헝클어진 마음을 살짝 덮어 놓았다.      


그로부터 두 달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바뀐 팀의 구성원들과 적응도 마쳤고 새로 바뀐 업무(담당차량 변경, 업무 변경 등)도 모두 숙지했다. 그런데 또 조직개편이 있어 소폭 인사이동이 있을 거라는 공지가 떴다. 이상하게도 우리 회사는 해마다 조직 개편을 한다. 그래봤자 나 같은 하위직에는 별 감흥도 없는 조직개편이다. 늘 그럴싸한 말로 새로운 과가 만들어진다. 어딘가는 없어지고 새로운 업무가 생겨나는 조직개편이었다.    

  

그에 이어 안 좋은 소식도 이어졌다. 우리 센터에서 일하다 행정업무가 어렵고 싫으니 다른 센터로 도망간 모 후배가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배는 참 특이한 사람이었다. 전에 근무하던 곳의 평판으로는 직원들과 어울리지 못하면서도 자기 몫은 빠짐없이 잘 챙기며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센터에 와서도 그 후배를 따라다녔던 평판처럼 분란을 일으켜 결국에는 원래 배정받은 팀에서 다른 팀으로 쫓겨났다. 다행히 새로운 팀에서는 팀장과 팀원들이 잘 대해주어 1년 가까이를 별 탈없이 근무했다(내가 볼 땐 그 후배가 잘해서라기보다 나머지 팀원들의 폭넓은 이해와 배려가 훨씬 커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일은 못했다. 아예 일을 배울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평소 소방관들이 하는 행정업무가 어려운 일이 많지 않음에도 그 후배는 조금만 어렵다 싶은 것은 본인이 처리하지 못하고 다음 근무자에게 넘기기 일쑤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만 하려 했지, 어려워 보이는 일은 여러 번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어도 처리하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으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관리자인 팀장이나 센터장이 보기엔 별 탈없이 돌아가는 듯 보였겠지만 같은 실무자인 내가 보기엔 분명 해결되지 않고 여전히 남은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1년을 지내다 행정업무 비중이 낮은 자리를 택해 도망간 듯 싶었다.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 후배가 옮긴 자리는 행정업무 비중은 거의 없는 대신 잦은 출동으로 인해 몸이 힘든 곳이었다. 막상 두 달간 새로운 업무를 해보니 힘이 들어 다시 우리 센터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 후배가 동료와의 불화로 여러 가지 사고를 친 전력이 있어 인사이동을 담당하는 직원이나 센터장, 팀장 모두 그 후배를 제대로 가르치려 들기보다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어르고 달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그 후배에게 이 회사는 언제든지 얘기만 하면 마음대로 근무지를 옮길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준 것 같았다.      


윗사람 말 안 듣고 말썽만 피우는 직원을 관리하려면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최대한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도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일 뿐, 제대로 된 원칙은 꼭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센터장과 팀장은 그 후배를 계속해서 두둔할 뿐 교육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센터장 : 다른 데서는 이상한 좋은 직원이라고 말이 많아 걱정 많이 했는데 막상 지켜보니 괜찮던데 다들 이상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000가(내 이름, 직급이라 생략) 잘 도와줘. 이번에 인사주임한테 전화받았는데 본인(모난 후배)이 우리 센터로 오고 싶다고 했다네, 그러니 받아줘야지, 어떻게 하나?     


팀장 : 나이 먹고 들어온 사람한테 업무능력을 기대하면 안 되지, 업무 못할 수도 있지, 그거 못한다며 무시하고 그럼 되나(팀장님보다 제가 소방관 생활 덜 했지만 일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잘도 배우던데요, 그 친구는 자세가 글렀어요)     


내 생각 : 직장에 왔으면 자기 몫은 제대로 해야 한다. 남의 돈 벌기 쉽냐? 모르면 물어보고 잘하지 못하면 연습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중간은 간다. 누군 처음부터 일 잘했냐? 물어보면 도와줄 사람 많다. 못한다고 가만있으면 누가 떠먹여 주냐? 네가 하지 못하고 넘긴 일들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 그렇게 얍삽하게 살고 싶냐? 나중에 후배가 물어보면 뭘 가르쳐주려고 그러냐? 그러다 후배들한테 선배 대접 못 받는다.     


그 모난 후배의 인사와 더불어 나와 내 동기의 원대복귀도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 후배를 두둔하던 팀장과 센터장은 갑자기 날 보고는 대뜸 이런 말을 던졌다(이 말을 듣고는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말 잘 듣고 일 열심히 하면 아무렇게나 막 시켜도 되는 건가?).     


센터장 : (우리 센터처럼 구급 자격자가 없어 인사이동한 지 3일 만에 또다시 인사이동한 곳이 많았다) 이제 우리도 구급교육받은 사람이 있으니 두 사람, 원래 있던 팀으로 돌아가야지, 언제 갈 거야?     


팀장 : 나도 이제 슬슬 옮기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말이 없길래 가만 보고 있었지, 어떻게 되는 거야?     


나 : 집안 사정이 있어서 바로는 안되고요, 6월 중순 이후에 옮길게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조용히 센터에서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는 나와 내 동기에게는 팀을 옮긴 지 2달 만에 별 일 아니라는 듯 팀을 옮길 것을 종용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에 반해 모난 후배에게는 어떻게든 편의를 봐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두 분의 관리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그냥 조용히 일 열심히 하니까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저희는 묵묵히 참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속이 상했지만 고난주간인 이번 주 조금이라도 회사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나와 모난 후배, 우리 센터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라는 임무를 받은 나로서는 센터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뤄나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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