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한여름인 7월 20일경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결혼 20주년인데 뭘 선물해 줄 거냐는 아내의 말에 갤럭시핏 3를 선물해 준다고 대답했습니다. 작년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모두 10월에 있어서 선물은 한 방에 퉁치고 싶지만 아내는 각각 선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상 선물은 한 번만 합니다)을 위해 샀던 갤럭시워치 4 클래식은 여태껏 안방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아내가 갤럭시 워치를 쓸까 했지만 올해 우리 집에 여러 일들이 있었고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그 시계는 여전히 새 포장 그대로 서랍 안에 잘 자고 있습니다. 아, 얘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빠졌네요. 그렇게 결혼기념일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다음 달 여행 얘기가 나왔습니다. 강원도 여행 일정 얘기를 어느 정도 마무리할 무렵, 둘째가 엄마, 아빠의 얘기에 불쑥 끼어듭니다.
둘째 : 그런데 우리 해외여행은 언제 가요?
나 : 우리 올해 초에 일본 갔다 왔잖아.
엄마 : 아들,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 가서 미니언즈 인형도 받았잖아. 기억나지?
둘째 : 아, 맞다, 그래도 또 가고 싶어요.
엄마 : 올해가 엄마, 아빠 결혼 20주년인데 해외여행 함 가 봐?
(아내의 여행 급발진이 이어졌고 거기에 뒤질세라 저 역시 힘을 더했습니다)
나 : 좋아, 나도 찬성
(여유자금이 없어서 여행경비 충당을 위해 그나마 모은 적금을 깰 예정입니다, ㅠㅠ)
어디로 갈까?
첫째 : 유럽
둘째 : 미국
엄마 : 얘들아, 거기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싸, 우리 가족비행기 타는 것만 500만 원이 넘어가 그건 무리야.
(이하 중략)
10여분 동안 가족회의 결과 최종 행선지는 싱가포르로 정해졌습니다. 사실 그곳은 우리 가족이 두 번째 방문하는 곳입니다. 2017년 6살, 3살 두 아이와 함께했던 싱가포르 여행은 동물원, 루지, 센토사 섬, 머라이언 동상 그 정도만 기억나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어리니 밤에 움직이는 일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클락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이런 곳은 못 갔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 여행지였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아내와 크게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1. 전에 가지 못했던 싱가포르 명소(클락키, 아랍 스트리트, 가든스 바이 더 베이, 호커센터 등)를 둘러본다
2. 택시나 그랩 등을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될 수 있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여행지가 정해졌으니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해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아이들 참여보다는 부모인 저희가 하는 게 맞습니다(여행경비는 총 600만 원 안에서 마감할 것, 숙소는 지난 일본 여행 경험에 따라 이동이 편한 지하철 역 인근 가성비 호텔로, 항공권은 7년 전 탔던 싱가포르 항공으로 결정했습니다). 아내는 호텔을, 저는 항공권을 예약하기로 역할을 나눴습니다. 결혼기념일이 포함된 10월 중순의 일정으로 하고 싶었으나 여러 사정상 결혼기념일이 하루 지난날로부터 6일간의 일정으로 숙소와 항공권 예약을 마쳤습니다.
항공권 예약은 네이버 항공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결제할 때 P000 특가라고 쓴 금액이 가장 쌌는데 그 금액으로 결제하기보다는 일반 카드 중에서 가장 낮은 금액으로 골랐습니다. 특가인 경우는 특정 신용카드 중에서도 적용이 되는 카드가 몇 가지 종류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제한조건은 작은 글씨로 주의해서 찾아봐야 했기 때문에 지나치고 갔다가는 오히려 인당 몇 만 원 더 높은 금액으로 항공권 결제를 할 뻔했습니다.
싱가포르 항공을 선택한 이유는 지난 여행 때 받았던 비행 선물 때문입니다. 싱가포르 항공은 탑승인원이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이하는 경우 승무원이 와서 축하 카드와 함께 작은 케이크를 주는 이벤트를 합니다. 이번에는 결혼 20주년 기념이라 출발 1주 전에 싱가포르항공에 신청 메일을 보낼 예정입니다. 여러 검색 엔진 중 가장 맘에 드는 걸 고른 후 "싱가포르 항공 기념일 케이크 신청"으로 검색하면 사람들이 신청한 내용이 나옵니다. 저 역시 그 정보를 참고해서 신청할 겁니다. 아이와 남편의 결혼 기념 인사도 좋지만 저 높은 하늘 위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해주는 결혼 축하는 아내 입장에서 꽤나 기분 좋을 듯합니다. 생각만 해도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숙소는 정말 고르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클룩, 마이리얼트립에서 아내는 호텔아고다 등을 뒤지며 가성비 있는 호텔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혹시나 위치도 좋고 숙소 상태가 좋은 곳인데 숙박비까지 싼 곳은 없을까(물론 싸고 좋은 곳은 거의 없습니다. 가격이 비싸면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더라고요), 희박한 확률을 뚫어보려 몇 시간을 투자했지만 남는 것은 없었습니다. 여행일로부터 거의 세 달 전인 7월 말부터 호텔을 뒤져봐도(참고로 싱가포르는 에어비앤비가 불법입니다. 그래서 리조트나 호텔을 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치, 교통, 숙소의 상태가 좋은 곳을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가성비(제가 생각하는 가성비는 교통이 편한 곳, 시내 중심가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있을 것, 가족 4명이 한 방에 머물 것, 1박에 30만 원 한정-시내 중심가나 전망이 좋은 곳은 1박에 50만 원이 넘는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가 좋은 곳을 찾았지만 우리 가족 4명이 한 방에 머무는 객실이 있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니면 어른 1, 아이 1 이렇게 방을 2개 예약해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었습니다. 여러 후보지가 있었지만 조건이 하나씩은 어긋났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찾은 곳이 Mercure Icon Singapore City Center입니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방 크기가 작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작을지는 한 번 자봐야 알 것 같습니다. 캐리어 펼칠 공간은 있겠죠.
다음 순서로 여행 계획을 짜야합니다. 일본 여행할 때처럼 블로그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 먼저 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도 읽었습니다.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내게 맞는 코스를 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일본 여행 계획을 짤 때도 느낀 거지만 글쓴이와 나와의 평가가 다를 때도 많았습니다. 가서 꼭 봐야 할 장소의 위치, 숙소에서의 이동거리, 사람들이 모르지만 숨은 명소 등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블로그와 후기로는 이게 100% 내게 맞는 정보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또 가장 최근의 정보가 필요했지만 원하는 장소의 최신 정보를 얻기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살 때만 해도 긴가민가 했습니다. 올해 초, 다시 또 싱가포르에 갈 일이 있겠어 생각하고는 책 정리를 하며 7년 전 샀던 싱가포르 여행서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책을 사자니 버린 책이 생각나 아깝기도 하고 혼자 힘으로 괜찮은 계획을 만들어야지 했는데 며칠동안 정보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 대다 보니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해졌습니다. 24년 최신 정보까지 포함된 따끈따끈한 새 책이었습니다. 책을 받아 펼쳐보니 감탄이 나왔습니다. 구역별로 이동방법, 가봐야 할 곳, 식당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부록으로 조그만 지도있고 책 중간에 여행 출발 준비, 유심, 포켓와이파이, 현지 유심의 차이점, 입국신고서 쓰는 법, 작가의 추천이 담겨 있어 좋았습니다. 또 3박 5일, 1박 2일 등 작가의 추천 여행코스가 있어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짬날 때마다 틈틈이 여행서를 읽고 나니 제 나름대로 우리 가족이 갈 곳, 봐야 할 곳 등이 정해졌습니다. 책을 참고해 6일간의 일정을 대략 만들고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회의지만 제 입장에선 보고서 작성 후 세 명의 상관에게 결재받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잠깐 훑어본 후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이번에도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가는지, 야경을 보려고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데 책에 소개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여경 명소를 가는지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계획서는 퇴짜 맞지않고 무사히 통과됐습니다 ㅎㅎ).
얼추 90% 정도 여행 계획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젠 예약할 장소 3곳의 예약을 하고 여행자보험, 유심 등을 사야 합니다. 여행은 갈 때도 좋지만 저는 준비하면서 느끼는 설렘이 가장 좋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가족 간의 믿음과 사랑이 더욱 깊어지길 바라며...